2019-05-27 18:25 (월)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는 ‘공인인증서’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는 ‘공인인증서’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8.08.27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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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푼과 포크 기능 겸비한 스포크, 비참하게 실패한 사례

모바일 환경에 탄력 대응 못하고 엑티브엑스 고질적 문제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2008년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중 환경이 파괴된 지구의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월E〉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월E는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에 남아 쓰레기를 재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인공지능형 로봇이다.

물론 쓰레기 정리 작업을 하다가 녹색 식물이 발견되면 우주에 떠있는 모함으로 신호를 보내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런 월E가 혼란에 빠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플라스틱 식기를 종류별로 분류하다가 ‘스포크’를 마주하면서이다. 스푼과 포크로만 식기를 구분했던 월E는 스포크가 낯설기만 하다. 결국 스푼과 포크를 오가던 월E는 그 물건을 둘 사이에 내려놓는다. 스푼도 포크도 아닌 물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스포크는 이처럼 정체성을 두고 태생적인 비애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음식컬럼리스트인 비 윌슨이 쓴 <포크를 생각하다>에는 스포크 관련 웹사이트에 실린 다음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스포크는 인간 존재의 완벽한 메타포이다. 스포크는 스푼과 포크의 기능을 둘 다 해내려고 노력하지만, 그 이중성 때문에 결국 둘 다 비참하게 실패한다. 스포크로는 수프를 먹을 수 없다. 그러기에는 스푼이 너무 얕다. 스포크로는 고기도 먹을 수 없다. 그러기에는 포크 살이 너무 작다.”

스포크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된 시기는 1909년이다. 대략 20세기가 열리는 시점 정도에 스포크가 식문화에 등장했을 것이다. 스푼과 포크 기능 모두를 담아서 편의성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이다. 양차대전과 빠른 산업화는 스포크 이용을 확대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스포크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유는 두 기능을 다 하지만 두 기능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다.

포크가 서양의 식문화에서 일반화된 시점도 250년 안팎이다. 스파게티를 즐기는 이탈리아에선 오래전부터 사용해왔지만, 악마의 삼지창과 유사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까닭에 유럽 각국의 식탁에 올라가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포크가 등장하면서 유럽의 식습관은 크게 변화하게 된다. 비 윌슨은 “포크는 어떻게 먹느냐 만이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도 바꾼다”고 설명하고 있다. 같은 비유를 스포크에 적용해 보자. ‘어떻게’와 ‘무엇을’ 모두에서 스포크는 허전하기만 하다.

두 개의 기능을 함께 모아서 서로의 장점을 취하려는 아이디어는 사방에 산재해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우리가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휴대폰일 것이다. 전화기와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사무기기까지 결합된 멀티플레이어이다. 아이폰이 등장한 것이 2007년의 일이니 이제 겨우 10년을 넘어섰지만, 스마트폰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고 휴대전화의 대세가 되었다. 서로의 장점을 슬기롭게 결합시켰고, 편리성은 기대 이상으로 사용자를 만족시켰다. 스포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기반의 금융서비스 개발에서 공인인증서가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뱅킹과 함께 성장해왔지만 엑티브엑스 문제로 소비자들의 불만의 대상이었던 공인인증서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짧은 역사였지만 거래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공인인증서의 순기능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오픈’이라는 시대적 화두와 인증서는 서로 어울리지 않았고 사설인증서와 뱅크사인과 같은 블록체인 방식으로 인증서의 형태도 변모하게 됐다. 폐쇄적인 환경 탓에 모바일 환경에선 생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안정성을 오픈환경에 맞춰 성장 발전시키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스포크처럼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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