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조작 유죄, 부정채용 지시는 무죄”

채용지시 여부 입증 못하면 무죄 가능성 ↑

<대한금융신문=염희선 기자> 올해 은행권을 관통한 채용비리의 첫 CEO 재판 결과가 발표됐다. 박인규 전 DGB금융 회장은 채용과정에서 점수조작 혐의를 인정받아 유죄가 확정됐지만 부정채용을 직접 지시했다는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에 비춰 볼 때 다른 은행의 채용비리 재판에서도 부정채용 직접 지시 혐의에는 죄를 묻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대구지법 제11형사부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박인규 전 회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대구지법 재판부는 박인규 전 회장이 부정청탁을 받고 점수조작으로 불합격자를 합격자로 둔갑시키는 등 채용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쳤다고 봤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절차로 채용돼야 할 지원자가 탈락해 분노와 배신감이 해소되기 어려워 죄가 무겁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그러면서도 박인규 전 회장에 40여년간 대구은행이 근무하면서 은행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노력한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기준을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재판부가 부정채용자 23명의 채용 성격에 따라 유·무죄를 달리했다는 것이다. 

먼저 부정채용자 23명 중 20명은 서류전형이나 임원면접 등의 절차에서 점수를 조작해 채용했다며 박인규 전 회장과 관련자들의 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나머지 3명은 박인규 전 회장이 채용에 관여한 것은 인정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 3명에 대해 판결문에서는 박 전 회장이 2015년 대구은행 신입행원 채용 당시 고교, 대학 동창의 자녀 등 3명을 채용하라고 지시했지만 불발됐다고 밝혔다. 이에 박 전 회장은 다시 인사부서장에게 채용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으며 인사부서장은 이들 3명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채용 관여사실은 인정했지만 압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점수조작과 같이 서류상으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사례에만 죄를 물은 상황”이라며 “CEO가 직접 채용에 압력을 가했다는 증거를 입증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인규 전 회장의 판결은 앞으로 예정된 은행권 채용비리 관련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채용비리에 연관성이 컸던 박인규 전 회장의 직접 지시로 인한 부정채용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판례가 나올 가능성이 커져서다.

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CEO가 직접 지시해 부정채용이 일어났다는 것은 검찰이 입증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현재 박인규 전 회장을 제외하고 은행권 현직 CEO가 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는 하나은행뿐이다. 함영주 하나은행장은 지난 8월 22일 채용비리 관련 서울서부지법에서 1차 공판을 마쳤다. 신한은행은 채용비리 관련자들이 서울동부지법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며 CEO는 채용비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상태다.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재판을 피해갔다.

이와 함께 오는 10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 증인채택에서 은행장들이 모두 제외되면서 향후 채용비리 재판에서 CEO들이 추가로 거론될 가능성이 더 줄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시중은행장들이 증인채택에서 제외되면서 한고비 넘겼다는 분위기다”라며 “채용비리와 관련해 CEO의 추가 혐의를 밝혀내고 죄를 묻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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