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인간의 약점 찾아 의사결정에 개입

유발 하라리 “자유의지는 신화일 뿐, 새로운 시스템 필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해킹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에 불법적으로 접근해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말한다. 대표적인 해킹 대상은 컴퓨터 자원을 많이 사용하면서 가치 있는 정보를 다량으로 취합하고 있는 정부기관 및 금융회사 등이다. 최근에는 취약한 보안망을 가진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주된 타깃이 돼 사회적 불안요소로 부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해킹의 대상이 컴퓨터에 국한되지 않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두 기술의 융합이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면서 컴퓨터가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해킹을 하는 날이 곧 다가온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는 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자유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부지불식간에 과학기술에 종속된 인류가 해킹에 노출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기계장치가 아닌 인간을 어떻게 해킹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먼저 들겠지만, 하라리는 생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강력한 컴퓨터 성능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는 빅데이터 프로젝트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그 데이터를 축적한 자들이 결국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자유의지’를 사례로 들어 기계에 복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 인류는 ‘자유의지’로 무장하고 폭압적인 정부(정체 포함)와 제도를 상대로 항거해 왔고, 대부분을 성공시키며 진보의 역사를 써왔다. 그래서 그 의지를 믿는 사람들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음모(?)를 무산시킬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와 관련 하라리는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우선 ‘자유의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으며, 기독교 신학의 필요성에 의해 만든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본성을 두고 벌여온 논쟁을 그는 최근의 과학적 성과를 들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대표 명제인 ‘너 자신을 알라’와 관련, 진화 발전의 역사 속에서 인류는 점점 더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왔지만 인류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를 빅데이터로 관찰했던 인공지능이 우리를 더 잘 알게 됐다는 것이다. 

컴퓨터 해킹은 잘못된 코드를 이용해 이뤄지지만 인간에 대한 해킹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개인의 선호, 그 중에서도 공포와 혐오, 편견, 욕망 등의 약한 고리를 이용해 이뤄진다고 한다. 즉 컴퓨터를 이용하면 할수록 더욱 자신의 약점을 많이 노출하게 돼 자연스레 해킹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해킹당하고 있는 사실을 모른 채 빅데이터 체제가 제공하는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다. 각종 포털에서 제공하는 기사는 점점 자신의 마우스 클릭 패턴(선호)을 읽은 뒤 그 선호체계에 특화된 콘텐츠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결합된 새로운 컴퓨팅 환경을 장악한 세력, 즉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와 금융회사 등이 공익이라는 가치 아래 데이터를 취합하고 있어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머릿속을 투명하게 보여 주고 있지만 우리는 이 기술의 종착점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종결된 명사가 없이 아직도 진행 중인 동사로만 설명할 수 있는 세상을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 기술의 선의만 믿고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3월 타계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유고집 <어려운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등장할 슈퍼휴먼이 나머지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암울한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인류와 그렇지 않은 인류간의 갈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발 하라리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의 불가피한 갈등을 해킹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결론에선 자유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해도, 그리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인간을 해킹할지라도 정치인들이 자신의 권력을 잃을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행 중인 혁명이 종착점이 없는 무한궤도라면, 그 선택은 가능한 것일까. 또한 빅데이터를 모으고 있는 금융회사의 고민의 지점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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