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군주는 빼앗은 땅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면 이전 지배자의 친족을 남김없이 학살해야 한다.” “군주는 적의 재물을 빼앗기보다 적을 죽여야 한다. 재물을 빼앗긴 자는 복수를 꿈꾸지만, 죽은 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버지의 원수보다 재산상의 손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말들이다. 가감 없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는 그의 주저 <마키아벨리>에서 그를 “악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규정한다. 

이전의 저작에서 악은 악일뿐이었다. 플라톤의 <국가>나 키케로의 <의무론> 등 당대의 도덕률과 통치에 대한 책에서 악을 찬양한 경우는 전혀 없었다.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어떤 일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만 편리하지 않고, 어떤 일은 편리하지만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믿음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오직 도덕적인 방법으로만 우리가 열망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같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그의 저서<자비론>,<이득론>에서 진정한 남성이란 명예와 영광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길 원한다면 언제나 유덕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르네상스기 저자들에게 이어지다가 마키아벨리에 이르러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악을 이야기한 최초의 저자는 아니지만, 그동안 악을 이야기한 자들은 문 뒤에 숨어서 사악한 정치사상을 설파하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가 통치에 필요하다면 비도덕적 행위까지 서슴지 않아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을 설파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대 이탈리아 상황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탈리아라는 민족적 개념이 요원했던 15세기 이 반도는 공화국과 공국, 그리고 왕국 등으로 분열돼 있었다. 잘 아는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공화국, 그리고 북부의 밀라노와 만토바, 페라라 등은 공국이었고, 로마 남쪽은 나폴리왕국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각축과정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등의 외세를 필요에 따라 불러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 마키아벨리는 주변 강국으로부터 이탈리아를 구원해줄 강력한 왕권의 출현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런 심정은 그의 책 <군주론>에 다음과 내용으로 실려 있다. “실로 이탈리아는 헤브라이 민족 이상으로 노예화되고 페르시아인들보다 더 혹사당하고 아테네인들보다 더 지리멸렬하며, 지도자도 없고 질서도 없이 짓밟히고 헐벗고 찍기고 유린당하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재앙을 견디어왔다.”

마키아벨리 이야기를 꺼낸 것은 관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군주론>을 풍경화가의 심정으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인민의 성격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될 필요가 있고, 군주의 성격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그를 최초의 근대적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관점을 가졌다는 점, 그리고 더 나아가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점이다. 

지방은행들의 고민이 깊어간다. 오프라인적 시각에서 작명된 은행이름은 여전히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성장을 위해선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데,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심지어 안방에서의 영업도 규모의 경제를 누리고 있는 시중은행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면서 버거움을 표시한다. 그래서일까. 지방은행들의 시선은 디지털에 모아지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박차고 나와 온라인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산업구조의 취약과 인구 고령화 등으로 지역경제 상황이 어렵지만 디지털화로 은행의 체질을 바꾸고 영업기반을 확대해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지난주 임용택 전북은행장이 4분기 경영전략회의에서 밝힌 이야기다. 그래야만 답을 구할 수 있다는 절실함이 묻어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창립 51주년을 맞은 BNK부산은행의 빈대인 은행장도 프레임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도약의 발판은 ‘디지털 금융 퍼스트 무버’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과거의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디지털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마키아벨리적 시선에 주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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