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는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한다. 그러나 결과는 같지 않다.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경쟁이 심화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옥죄면서 더 완벽해지려 한다. 이러한 자세는 지위고하가 따로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래서 최선을 능가하는 완벽을 꿈꾸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이 주도하는 새로운 환경은 극한의 경쟁을 매일같이 예고하고 있다. 최근 보도되고 있는 금융관련 기사를 훑어보자. 

KB국민은행의 허인 은행장은 지난 1일 창립기념식에서 “대형 플랫폼 기업이 은행들의 최대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전기와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듯이 ‘디지털’은 4차 산업혁명의 새 물결이며 변화는 선택이 아닌 우리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대다수 직원들이 디지털 변화 리더로 거듭날 수 있도록 ‘디지털 탐험대’, ‘사내벤처 육성’, ‘디지털 아카데미’ 같은 활동과 연수에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통합 데이터센터를 오픈한 하나금융그룹은 지난달 30일 디지털 비전 선포식을 갖고 디지털 전환 원년을 공표하고 ‘손님 중심의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더 이상 은행이나 금융이라는 고전적 업종으로 업무를 받아들이지 말고 정보기술 언어로 업무를 해석할 수 있는 IT기업이 되자고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금융은 올해부터 모든 직원들에게 코딩을 교육시킬 예정이며 현업직원과 IT직원이 한 팀에서 일하면서 조직은 정보기술 중심으로 이행할 계획이란다. 

사용되는 언어부터 10여 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가 한두 회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전체 금융회사들이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급격한 사고의 전환기를 맞게 되면 완벽에 대한 개인의 욕망은 더 커지기 마련. 그런데 “잡초 없는 정원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17세기 영국의 성직자인 토마스 풀러의 말이다. 완벽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그런 뜻을 알아서였을까. 선(禪)을 아는 일본의 정원사들은 균형미를 이룬 정원의 한 구석에 일부러 민들레 몇 송이를 심는다. 또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면서 살짝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 넣는다. 이들은 이 구슬을 ‘영혼의 구슬’이라고 부른다. 페르시아 양탄자로 유명한 이란의 장인들도 같은 이유에서 아름다운 문양이 담긴 카펫을 만들면서 흠을 하나쯤 남겨 놓는다.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불리는 이 흠은 ‘옥의 티’와 같은 존재다. 

미국의 유태계 의사인 레이첼 나오미 레멘이 그의 책 <할아버지의 기도>에서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완벽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추구”한다며 소개한 일화들이다. 

시선을 돌려 우리나라로 와 보자. 18세기 조선의 한양에서 박지원 등과 교류하며 필명을 날렸던 이덕무라는 선비가 있다. 그의 젊은 시절 글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좋은 거문고는 쉽게 상하고 잘 달리는 말이 먼저 들피가 지며, 기이한 책은 좀벌레가 망가뜨리고 아름다운 나무는 딱따구리가 쓰러뜨린다.”

즉 최고의 상황은 영원할 수 없고, 완벽이란 기할수록 완벽에서 멀어진다는 뜻을 내포한 문장이다.

이덕무는 빛나는 재주를 뽐내기보다 자연이 준 제 바탕을 지켜서 해코지 당하지 말자고 한 말이다. 
멈추지 않고 최고의 속도로 달려야 하는 기관차와 같은 운명. 지금까지와 다른 언어로 무장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해야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페르시아의 흠’은 필요할 것이다. 이덕무의 문장에 “재앙이 재능에 달라붙지는 않으나 재능은 반드시 재앙을 초래한다”고 적고 있다. 재앙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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