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관행 뜯어고쳐라…직격탄 날린 금융당국
“판매건전성 높이는 한편 채널경쟁력 갖춰야”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보험사의 전화 및 홈쇼핑 영업이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 영업채널인 텔레마케팅(TM)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보험사와 가입자 사이에서 모집인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줄인 대신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장점에 보험사의 신(新) 채널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사태 이후부터 성장세가 꺾이며 점차 보험소비자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현재는 불완전판매의 온상이란 불명예와 각종 규제 탓에 미래를 가늠하기 힘들다. 본지는 창간 23주년을 맞아 보험사 전화영업 채널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신뢰도 추락한 TM…성장마저 정체

본격적으로 텔레마케팅 채널이 말썽꾸러기로 전락한 건 2013년부터다. 개인정보유출 사태로 한차례 홍역을 치르며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비대면 영업에 대해 보다 엄격한 규제를 도입했다. 일례로 보험사는 고객의 마케팅 활용 동의가 없으면 보험영업을 목적으로 일체의 연락을 할 수 없다. 고객이 수신거부 의사를 밝히면 영업목적의 연락이 불가능한 ‘두낫콜(DO NOT CALL)’ 제도도 크게 확대됐다.

영업 중단사태까지 겪으며 각종 개인정보보호 정책이 쏟아져 나오자 텔레마케팅으로 유입되는 보험계약도 줄어들었다. 실제로 전화, 홈쇼핑, 인터넷, 모바일 등 비대면채널의 성장세는 2012년을 최고점으로 정체 혹은 마이너스 성장 중이다.

보험연구원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생명보험사의 비대면채널 초회보험료 성장률은 1.9%에 그쳤다. 같은 기간 대면채널 성장률(7.7%)과 비교하면 사실상 정체 상태였던 셈이다. TM 성장률이 2.5%에 그친데다 홈쇼핑은 6.6% 마이너스 성장했다.

지난 10년간 손해보험사의 비대면채널 원수보험료는 15.6% 성장하며 대면채널 성장률(11.4%)를 웃돌았지만 이는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의 인터넷 가입 등이 늘면서 비대면채널 의존도가 매해 확대된 영향이다. 이미 2015년부터 전체 원수보험료에서 인터넷판매 비중이 홈쇼핑판매 비중을 추월하기도 했다.

보험연구원 안철경 선임연구위원은 “초기 예상과 달리 비대면채널이 활성화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2010년 이후 발생한 불완전판매와 개인정보유출 등으로 소비자보호를 강화하는 규제감독 정책 등도 하나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텔레마케팅 채널의 정체는 규제에서 기인한다는 시각이다. 전화영업의 특성상 대면 설계사 대비 상품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어렵다는 측면에서 금융당국은 규제를 지속 강화해왔다. 통화내용이나 완전판매에 대한 모니터링 비중이 점차 확대됐으며, ‘해피콜’ 제도를 도입해 일부 상품에서는 보험 청약단계 이후 불완전판매 여부를 자체 확인토록 의무화했다.

 

DB수급 경쟁에 변종영업도 활개

갈수록 강해지는 금융당국의 규제를 두고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텔레마케팅 영업에 ‘손발이 묶였다’고 본다. 영업목적으로 걸려오는 보험사의 전화에 소비자들의 피로도가 여전히 높은데 보험사의 판매책임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영업에 활용 가능한 수준의 적법한 고객DB(데이터베이스)를 모으기 위해 써야 할 보험사의 비용만 더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텔레마케팅 영업의 핵심인 고객DB를 수집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전화영업은 여전히 소비자 보호와는 동떨어져 있다. 일명 ‘체결률’ 높은 고객DB 확보에 혈안이다. 보험에 가입했거나 관심을 가졌다면 보험을 권유하는 전화에도 거부감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보험사마다 공을 들이는 영업방식은 이미 자사 보험에 가입한 계약자를 대상으로 전화를 거는 텔레마케팅 조직인 POM(Policy Owner Marketing)지점 활용이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전화해 운전자보험을 권유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미 마케팅동의가 이뤄진데다 보험가입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다보니 보험 권유가 비교적 쉽다. 인터넷 검색, 보험사 홈페이지나 각종 사이트의 보험료 계산 및 문의 등으로 유입되는 DB도 보험사의 타깃이다. 각종 보험관련 홈페이지에서는 개인정보 제공 필수동의 항목을 선택하면 마케팅 목적 활용동의가 슬그머니 자동 완성되도록 하는 경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클릭 한번이면 하루, 이틀 새 텔레마케터에게 보험가입 권유 전화가 온다. 일종의 미끼 영업이다.

텔레마케팅 영업으로 성장한 한 보험판매 대리점은 보험관리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DB영업에 활용한다. 앱 이용자가 가입한 보험내역을 보여주기 전 서비스 이용 동의를 받고 보험가입내역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며 전화영업을 하는 방법이다. 이외에도 케이블TV에서 방영되는 각종 보험상담 방송도 DB수급의 창구 역할을 한다. 보험 상담을 해준다며 전화를 받고 텔레마케터에게 상담기록을 전달한다.

이렇게 모아진 DB는 보험사 혹은 대리점에 속한 텔레마케터에게 하루 10~15개 이상씩 배당된다. 더 많은 DB로 영업을 하고 싶다면 돈을 주고 DB를 사야한다. 텔레마케터를 모집하는 구인사이트에서는 보험사와 대리점들이 매일 혹은 매월 공급해줄 수 있는 DB의 개수가 구직 선택의 잣대가 되고 있다.

한 보험사 마케팅 담당 임원은 “소위 체결률 높은 DB는 건당 7만~9만원선에 거래된다. 고객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줄어들면서 DB당 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라며 “DB를 구매한 텔레마케터가 진짜 고객이 필요로 하는 보험을 소개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강화된 규제…‘사고뭉치’ 이미지 벗을까

여전히 금융당국은 TM채널의 불완전판매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0건 중 1건 이상은 불완전판매였던 과거보다 나아졌을 뿐, 지난해 말 기준 전체채널(0.22%) 대비 높은 텔레마케팅과 홈쇼핑채널의 불완전판매비율(0.33%)을 볼 때 보험사와 보험소비자 간 정보비대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장 직속 자문기구인 ‘금융소비자 권익제고 자문위원회’가 TM채널에 판매관행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금융위원회에서도 지난 5월 보험산업의 신뢰회복을 위한 첫 단계로 홈쇼핑서 이뤄지는 보험광고를 지목했다. 금융당국이 올해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TM과 홈쇼핑 판매관행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유다.

골자는 △전화로 보험상품을 설명하기 전에 상품요약자료 선 제공 △개인정보취득경로를 묻지 않아도 먼저 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식의 과장표현 자제 △홈쇼핑의 글자크기 확대 및 보험금 지급제한사유 명확화 등이다.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TM과 홈쇼핑채널의 판매는 더욱 위축되겠지만 모집과정에서의 건전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거나 어려운 보험설명을 길게 나열하는 등 집중해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던 전화와 홈쇼핑 영업의 판매방식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설계사 채널에서 수당을 이유로 판매를 꺼리는 중저가형 보험상품은 여전히 TM채널이 담당하고 있다. 대면채널 대비 사업비가 낮다는 측면도 보험소비자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유인이 된다. 이에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른 채널과 지속적인 경쟁이 가능한 채널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른 채널에 비해 불완전판매 비율은 높지만 대면채널 대비 완전판매에 한계가 있다는 특성에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며 “TM채널을 발전시켜 채널간 경쟁과 다양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도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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