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간편결제사업자에 은행공동 오픈API 사용 지시
핀테크기업 육성 위해 대기업 배제한 초기 입장과 대치

▲ 금융결제원의 은행공동 오픈플랫폼 공식홈페이지. 오픈플랫폼 이용대상 자격조건 항목에 '중소기업법 상 중소기업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상생경제를 외치며 도입된 정부의 핀테크 정책이 초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간편결제사업자에게 개별 제공되던 펌뱅킹 서비스를 금융결제원에서 운영중인 은행공동 오픈플랫폼(API)으로 일원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은행은 간편결제사업자에게 결제업무를 대행해주고 건당 200~4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펌뱅킹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대신 한 회사당 연간 수백억원 이상의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은행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익원이다. 하지만 금결원의 은행공동 오픈 API를 이용해 펌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개별 회사로부터 받는 수수료 수익은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금융위의 이번 조치는 얼핏 보면 은행이 일방적으로 받고 있는 높은 수수료 수익을 소상공인에게 돌려준다는 상생경제의 취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러모로 모순투성이다.

우선 정책의 도입목적부터 위배된다. 2016년 금융당국은 핀테크사업 활성화를 위해 16개 시중은행과 세계 최초로 은행 공동 오픈플랫폼을 구축했다. ’핀테크기업’이 금융서비스를 편리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국내 모든 시중은행의 통로(API)를 열어주기로 한 것이다.

오픈플랫폼을 이용하기 위한 자격요건 또한 금결원의 공식홈페이지에는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이어야 한다고 정확히 명시돼 있다.

하지만 카카오페이(카카오), 네이버페이(네이버), 페이코(NHN) 등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간편결제서비스 사업자들은 대부분 대기업 계열사다. 이들에게 은행공동 오픈API를 열어주는 것은 스타트업 및 중소 핀테크기업 육성을 위해 만든 정책을 스스로 거스르는 결과다.

은행공동 API를 이용해 득을 얻게 되는 대상도 대형 간편결제사업자와 금융결제원뿐이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은 은행에 지불하던 수백억원의 수수료가 절감되고 금융결제원은 은행들로부터 공동 API 사용 명목으로 내는 분담금을 받게 된다. 반면 시중은행과 은행 펌뱅킹 시스템에 전산망을 제공하던 중소 중계사업사(VAN)들은 당장 수수료 수익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간편결제사업자들의 수수료 절감으로 생긴 혜택이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 공동으로 만들어진 뱅크사인, 오픈플랫폼 모두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것은 정부가 외치는 상생경제 취지와 완전히 모순된다”며 “정책 책임자가 핀테크 정책을 발표하고 다음날 바로 전보조치되거나 수시로 담당자가 바뀌는 등 정책의 일관성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 최초라며 보여주기식 정책만 계속 내놓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금융위는 우리나라 지급결제시장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은행권, 결제사업자, 중계업자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며, 펌뱅킹 수수료 인하나 오픈 API로의 전환 등은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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