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제복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정 제복이 규정하는 집단은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됐고, 모두가 그 집단과 관계를 맺길 원했다. 그런데 제복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더니 어느 순간 열광은커녕 천덕꾸러기가 됐다. 

제복은 전쟁에서의 피아 구별 혹은 계급과 신분을 나누기 위해 고유의 복장을 선택한데서 출발한다. 고유하게 부여된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복장예절만큼 확실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복은 이렇게 출발부터 권위를 담고 있고, 권위의 발현을 통해 상위의 질서를 확보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제복에 열광한 것은 제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권위였던 것이다.

또한 제복은 집단의 정신력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로도 작용했다. 특히 전쟁 중에 제복은 군기를 확인하는 수단이 됐으며,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복장군기는 엄하기로 유명했다. 당시 독일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강대국과 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병력에서 크게 열세였다. 이에 독일은 복장군기를 강화시켜 각자의 상황에 맞춰 스스로 작전을 수정할 수 있는 임무형 전술을 펼치게 했다.  

이처럼 제복은 다양한 의미로 가지고 출발했고, 권위주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했던 얼마 전까지 맹위를 떨쳤다. 특히 소득이 충분치 않았던 시절, 제복은 경제적 이유에서 문화적 코드로 등장한다. 군복을 넘어 교복, 그리고 제조업과 서비스업까지 제복은 일상복으로 자리한다. 이 시기 제복은 경우에 따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주기도 했으며, 경제적 궁핍함을 덜어내주기도 했던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았던 권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집단도 사라진 권위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집단을 이끄는 리더십과 그 성과에 따라 집단은 매번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가용할 수 있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제복은 더 이상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기호를 반영한 개성 있는 옷을 입고 싶은 욕망도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이 같은 제복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세계 전자회사를 소니가 대표하던 1980년대, 스티브 잡스는 소니 본사를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모리타 아키오 회장으로부터 전후 경제적 이유에서 소니가 유니폼을 착용했고, 몇 년이 지나 직원들은 유니폼을 소니만의 상징으로 여기게 됐고 그 결과 서로 단결하는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잡스는 애플의 자존감을 대신할 유니폼을 디자인해 적용시키려 했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애플 직원들은 잡스의 요구를 거절한다. 결국 잡스는 자신만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것이 검은 색 터틀넥으로 상징되는 잡스룩이다. 

최근 은행을 포함 금융권에서 탈유니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없던 시절, 유니폼은 옷값 줄여 저축을 늘릴 수 있는 고마운 상대였고, 좋은 직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자부심의 대상이었던 금융권의 유니폼은 요즘 차별의 대상처럼 느껴져 직원들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애물단지가 됐다. 

특히 직급은 구분하는 수단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여직원들의 제복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유니폼 대신 간편 복장을 선택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9월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위해 유니폼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후 일선 창구를 찾는 고객의 갑질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반응은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KDB산업은행도 최근 텔러 직군의 복장을 자유화하기로 했다. 한때는 입어서 긍지를 느꼈던 복장이지만, 이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도 얼마 안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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