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앙’ 만들면서 선진 양조기술 익힌 보기 드문 와인 메이커

와인 맛의 뼈대, 타닌의 질감 살리는 ㈜한국와인 하형태 회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포도는 생육기간 중에 온도가 높아야하고 강수량은 적어야한다. 대표적인 포도 산지, 특히 좋은 포도주가 나오는 곳의 기후를 살펴보면 대개가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름에 강수량이 많은 우리나라는 포도 생산에 적합한 기후는 아니다. 유럽의 경우도 프랑스의 파리, 즉 북위 48도를 기준으로 남과 북이 확연하게 갈린다. 남쪽인 프랑스의 대부분과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등은 이름난 포도주를 내고 있지만 프랑스 북부와 독일, 영국 등은 와인 생산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이들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후 온난화의 결과 포도는 도버해협을 넘어 영국 남부지역에서도 자라기 시작했고, 아이스 와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리즐링은 독일과 스위스 지역에서 양조용 포도로 잘 키워지고 있다. 

이를 반증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는 포도가 전 세계에 걸쳐 8000여 품종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중 200여 품종이 양조용으로 사용되고, 전체 와인 생산량의 66%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베르네 쇼비뇽, 피노누아, 시라, 샤도네이, 쇼비뇽 블랑 등의 35개 품종이지만 말이다.

비록 소수의 품종과 나라가 전체 와인을 대표하고 있지만, 곡물의 탄수화물을 당으로 분해시킬 수 있는 발효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포도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제례용 술로 양조돼 왔다. 그리고 지금도 신토불이의 관점에서 포도주를 양조하는 나라들이 있다. 경북 영천과 충북 영동, 그리고 경기 대부도 등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에 해당된다.

이 와이너리 중 ‘마주앙’을 만들면서 ‘한국와인’을 꿈꿔온 와인 메이커가 있다. 경북 영천에서 ‘뱅꼬레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하형태 대표. 그는 대학원을 마치고 오비맥주에 입사해서 근 20년가량을 ‘마주앙’과 함께 살아온 보기 드문 국산 와인 전문가다. 

IMF 구조조정 기간에 오비맥주를 퇴사한 그는 자신의 고향 영천에 뿌리를 내리고 5000평 규모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한국와인’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당시 지방의 지자체에선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과일주에 눈길을 두기 시작했고, 양조 전문가인 그를 초빙해 지역에 특화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다. 문경의 오미자 와인과 청도의 감 와인, 청송의 약대추 와인 등은 그의 손길을 거쳐 간 와인들이다. 

그리고 지난 2006년, 자신이 꿈꿔온 ‘한국와인’을 완성시키기 위해 (주)한국와인을 설립한다. 물론 식용 포도인 캠벨과 머루포도(MBA 품종)로 시작한 양조였지만, 와인 강국을 다니면서 배운 양조기법을 최대한 접목시키며 와인의 품격을 갖추려했다. 그 단적인 예가 그해 빚은 MBA 품종의 레드와인이다. 당시 이 와인에 대한 평판은 참혹했다고 한다. 술은 달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형태 회장은 포도주의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양조를 선택한다. 

MBA품종은 타닌감이 부족한 품종이다. 따라서 아무리 잘 빚어도 타닌에서 느낄 수 있는 묵직함을 느낄 수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 뱅코레 와인너리에서 생산 중인 와인 5종. 왼쪽부터 레드, 화이트, 로제, 스타베리 오디, 아이스 와인. 한국와인에선 이밖에도 감와인과 타닌의 질감을 강화시킨 머루포도 와인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로제와인을 만들면서 제거한 포도껍질을 레드와인에 더 넣어 양조를 한 것이다. 껍질을 더 넣었기에 와인 잔에 담긴 2006년산 MBA의 색깔은 짙은 갈색을 띨 만큼 짙었다. 10년을 훌쩍 넘긴 ‘뱅꼬레’의 2006년 MBA 레드는 색깔만큼 타닌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즉 감미와 산미, 그리고 중간 정도의 타닌의 바디감은 그동안 국산 와인에서 맛볼 수 없는 밸런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하 회장의 양조철학을 느낄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와인은 곧 출시 예정에 있는 감와인. 감의 학명은 그리스어로 디오스피로스. 신의 과일이라는 뜻이다. 감의 떫은맛은 타닌의 맛이다. 따라서 이 타닌은 자연스레 술맛의 뼈대 역할을 맡게 된다. 여기에 숙취해소 물질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맛과 향, 그리고 약성까지 모두 취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이러한 와인에서 느낄 수 있었던 ‘뱅꼬레’의 인상은 그의 말대로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와인,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와인이 가진 미덕, 즉 와인 맛의 뼈대인 바디감을 살리는 와인이다.

현재 그의 포도원에는 캠벨과 MBA이외에 카베르네 쇼비뇽, 샤르도네, 메를로, 리즐링 등 15종의 포도 품종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와이너리 한편에는 수확한 유명 품종으로 시범 양조한 와인들이 익어가고 있다. 이러한 실험들이 ‘뱅꼬레’의 내일을 만드는 토대일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