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계약자간 손해사정서 받는 시기 달라
보험금 책정 오류나도 계약자 알권리 ‘전무’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내년부터 보험소비자도 보험금 산정내역이 담긴 손해사정서를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보험사와 같은 시점에 미리 보진 못한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이 결정되기 전까진 보험계약자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한 탓이다.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업법 시행령 제189조 개정 시행으로 올해 8월 22일부터 보험사에게 업무를 위탁받은 손해사정법인(위탁손해사정사)의 손해사정서 제공 범위가 보험사에서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등으로 확대 적용됐다.

손해사정이란 보험사고 발생 시 사고에 따른 손해액과 보험금을 사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전까지 위탁손해사정사는 보험사에게만 손해사정서를 제공했다.

다만 실제 보험계약자가 손해사정서를 받을 수 있는 시기는 내년 1월부터다. 보험사와 손해사정법인간 위탁계약 체결일과 계약주기가 달라 6개월의 유예를 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계약주기가 도래하지 않더라도 내년 1월부터는 일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험사에 전달했다.

통상 손해사정서 제출은 보험금 지급심사 전에 이뤄진다. 보험업법에서는 위탁손해사정사가 손해사정서를 작성하면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모두에게 ‘지체 없이’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자보다 먼저 손해사정서를 받아볼 수 있도록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보험계약자는 보험사가 손해사정서를 받아본 뒤 최종 보험금지급 결정까지 마무리되면 손해사정서를 받아볼 수 있다.

때문에 손해사정 단계부터 보험계약자가 보험금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당초 법률 개정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험사의 의도대로라면 보험계약자는 보험금 산정 과정에서 손해사정 내용은 물론 보험금 책정에 오류가 있더라도 그 내용을 미리 알 수 없다. 손해사정서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결정에 대한 통보와 다름없는 셈이 된다.

보험사가 미리 받아본 손해사정서를 바탕으로 보험금 지급의 타당성을 재검토할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상법상 보험사는 계약해지 사유가 발생할 경우 그 사실을 안 날(손해사정서를 접수받은 날)로부터 30일 내에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만약 보험사가 이 기간 동안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위반 등 보험금 면책 사유에 대해 조사에 나선다면 보험계약자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다. 보험계약자는 보험사가 손해사정법인에게 손해사정서를 전달받은 날을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 손해사정사는 “실무적으로는 보험사가 손해사정서를 전달받은 뒤 제척기간(보험사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법정기간)인 30일을 넘겨 계약해지 사유를 발견할 때가 더러 있다”며 “이 경우 서류상으로 손해사정서를 받은 날자를 변경해 제척기간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 보험사와 보험계약자간 정보비대칭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금융위는 위탁손해사정사가 손해사정서의 최종 작성을 확정한 경우라면 보험사와 보험계약자에게 제공하는 시기를 달리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개정 법률이 위탁손해사정사가 손해사정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최종 확인되지 않은 손해사정서까지 보험계약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라며 “다만 위탁손해사정사가 최종 손해사정서를 작성한 경우에는 보험사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시기에 불합리한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험계약자는 손해사정서를 우편, 팩스, 문자, 이메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받을 수 있다. 다만 보험금 청구 서류 접수 이후 3영업일 이내에 보험금이 지급되는 경우 위탁손해사정사는 손해사정서를 교부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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