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법원 “부양가족 책임없다” 판결 내려
지자체, 주민재산권 보호 위해 보험가입 확대

치매환자가 가족의 부주의로 타인에게 큰 물적 손해를 일으켰다면 가족이 손해를 모두 보상해야할까. 일본 최고재판소는 철도회사에서 91세의 치매환자에게 청구한 720만엔의 손해배상금액에 대해 가족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리며 일본 사회에 큰 이슈가 됐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치매 고령자 수는 30% 이상 증가했으며 연간 1만명 이상의 고령자가 실종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일본의 판결은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007년 12월 아이치현 오부시에 거주하는 91세의 치매환자 A씨는 새벽에 자택에서 부인이 잠시 잠든 사이 혼자 돌아다니다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철도회사 JR동해는 A씨가 전철에 치여 사망하면서 발생한 피해복구비와 출근시간 대체교통비용 720만엔에 대해 A씨의 가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에서 나고야 지방재판소는 A씨 부인에게 졸음에 의한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과실과 별거 중인 장남에게 사실상 감독자로서 아버지의 배회 방지대책을 게을리한 과실을 인정해 청구금액 720만엔을 전액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심에서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장남의 감독책임 의무는 인정하지 않고 A씨 부인에게만 감독책임과 전철회사의 감시의무 소홀을 인정해 A씨 부인에게 청구금액의 절반인 360만엔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1심과 2심의 판결과 달리 최고재판소는 A씨 부인이 85세로 거동이 불편한 간병상태이며 장남의 경우 20년 이상 부모와 동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감독의무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손해를 배상을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일본의 치매 고령자는 2012년 462만명(65세 이상 7명 중 1명)에서 2025년 730만명(65세 이상 5명 중 1명)으로 증가해 사회적 비용이 14.5조엔에 이를 전망이다.

최고재판소의 판결 이후 일본에서는 치매 고령자가 타인에게 물적손해 사고를 입힐 경우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이러한 불안감이 고조되자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치매 고령자로부터 지역주민의 재산권 피해를 보호하기 위해 민간보험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가나가와현 야마토시를 시작으로 올해 일본 아이치현 오부시, 이바라기현 코야마시, 가나가와현 에비나시, 후쿠오카현 쿠루메시 등에서 치매환자를 대상으로 한 배상책임보험을 도입했고 효고현 코베시도 내년부터 관련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야마토시가 계약한 보험상품은 개인배상책임보험부 상해보험특약으로 가입대상은 야마토시가 실시하는 치매 고령자 보호복지제도에 가입한 거주자를 대상으로, 보험료는 피보험자 1인당 연간 약 6000엔을 야마토시 예산으로 부담한다.

보장내용은 치매 고령자가 제3자에게 재산적 피해를 입혀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거나 치매 고령자에게 상해사고가 발생할 경우 손해보험회사가 최대 3억엔 한도의 손해배상금과 상해사망·후유장해보험금, 입원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민법에서 일본과 유사하게 책임 무능력자의 감독책임을 가족에게 부여하고 있지만 최근 자녀와 동거하지 않고 고령자 부부만 동거하는 고령자 가구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노령의 배우자만으로 치매 고령자를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제3자가 치매 고령자로부터 입은 물적 손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는 경우 치매 고령자에 대한 손해배상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번 일본의 판결사례는 재택요양 시 가족이 치매 고령자를 24시간 감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를 감안할 때 치매 고령자 보호가 가족만의 부양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보험연구원 이상우 연구원은 “일본은 치매 고령자 가족의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지역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각지대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며 “일본과 법률이 유사한 우리나라에서도 치매환자와 관련된 소송사례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기본적 인 간병은 가족 중심으로 부양하되 보호사각지대가 발생할 경우 개인의 문제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부 및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3자 피해구제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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