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강신애 기자> “인도네시아의 제약 조건 탓에 현지화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제약이 우리에겐 성장의 도화선이었다.” 신한은행 인도네시아 현지법인(BSI) 변상모 법인장은 BSI의 성공 전략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현지은행의 독과점, 엄격한 금융당국, 성장률 정체로 인한 한국기업 부재 등 인도네시아가 가진 제약 조건을 ‘현지화’ 전략으로 극복한 것이다. 

대한금융신문은 인도네시아에 직접 방문해 신한은행 인도네시아 현지법인(BSI)의 성공적인 정착과 청사진을 들여다보고 왔다. 어려운 인도네시아 금융 환경 속에도 그들의 노력이 만든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도네시아, 외국계은행 성장 어려운 텃밭

변상모 법인장은 인도네시아를 ‘외국계은행이 살아남기 어려운 텃밭’이라고 표현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외국계은행에 짐이 되는 세 가지 제약요건이 있어서다.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들의 독점 체제, 느린 성장속도, 인도네시아 금융당국(OJK)의 엄격한 감독이 그것이다. 

인도네시아 내에는 100개가 넘는 일반은행이 있다. 여기에 샤리아(Sharia : 이슬람 율법에 의한 은행, 181개)와 지방은행(1636개)까지 합하면 은행 수는 2000여개에 달한다. 자산 상위 1~5위사는 모두 국영은행으로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전체의 40%에 달한다.

변 법인장은 “인도네시아는 겉에서 봤을 땐 인구 2억6500만명의 큰 시장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 보고 진출해선 안 된다”고 단언했다.

인도네시아 국민의 60%는 은행 거래를 하지 않는 언뱅크드(unbanked)고객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내 뱅크드(Banked)고객은 40%인 1억2000만명 수준이다. 이 중 40%는 국영은행 고객인데다 지방은 지방은행이 시장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인도네시아 현지은행의 독점체제인 셈이다.

인도네시아 경제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인 점도 장애물이다. 인도네시아 경제성장률은 5%대로 10년간 4~5%를 유지 중이다. 비슷한 동남아 국가인 베트남이 6.7%인 것과 비교하면 낮다. 정체된 성장률은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을 주저하게 만들고, 이는 한국계은행의 영업처 발굴난으로 이어졌다. 통상 외국 현지법인의 주요 영업대상은 본국에서 진출한 기업인데 인도네시아에는 이 같은 영업처가 부족한 상황이다.

변 법인장은 “베트남에서의 성과를 기대하고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했으나, 베트남 대비 성장속도가 늦고 진출한 한국 기업수도 적은 편이다”라며 “외환자유화 미실현, 경제성장률 부진 등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계 은행이 취할 수 있는 파이가 작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의 엄격한 감독 스탠스도 제약 요인 중 하나다. OJK는 매년 외국계 은행에 3개월가량의 정기감사를 실시한다. 신상품 런칭 시에는 인허가 과정만 6개월이 소요된다. 현지법인들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지화에 집중…2년 만의 급성장

악조건은 오히려 BSI의 기회요인이 됐다. BSI는 악조건 근복을 위해 현지화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먼저 BSI는 OJK와 우호 관계 형성을 구축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BSI는 설립부터 OJK와의 교감을 통해 이뤄졌다. OJK가 외국계 현지법인 설립을 쉽게 허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작은 현지 은행 2개를 인수한 후 통합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OJK는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라이선스를 지급했다. 해당 전략은 BSI가 최초로 활용해 OJK의 승인까지 이어진 사례다. 이후 외국계은행들은 인도네시아 진출 시 이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직원들은 대부분 현지직원으로 구성했다. 경영진 6명 중 주재원은 2명(은행장, CFO)뿐이며 현지직원은 4명이 보임돼 있다. 인도네시아 내 60개 영업점 지점장도 모두 현지직원이다.

현지인을 타겟팅한 영업전략도 성과를 내고 있다. BSI가 올해 초 출시한 근로자신용대출(KTA)은 금방 시장의 인기상품으로 자리잡았다. KTA는 제 1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이 어려운 공장근로자 대상 상품이다. 월급여의 3~4배를 대출해주고, 월급여를 통해 1~2년동안 분할 상환하는 구조다. 인도네시아에서 KTA는 은행권이 아닌 멀티파이낸스사나 신용협동조합을 통해 고급리로 제공됐다.

은행인 BSI에서 저금리로 상품을 취급하자 인도네시아 기업들은 주목했다. BSI는 상품 출시 1년이 채 안 돼 5개사 약 1500여명에게 대출을 지원할 수 있었다.

변 법인장은 “목돈이 필요한 근로자에게는 안정적인 분할 상환 구조의 신용대출을 지원하고, 기업에는 장기근속 유인책을 마련해준 셈이었다”라며 “이용 중인 근로자와 기업에 모두 호평을 받고 있어 KTA대출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지화 전략에 힘입어 BSI는 인도네시아 진출 2년 만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BSI의 총자산은 지난 2016년 12월 4조2100억루피아에서 지난 2018년 10월 기준 12조2800억루피아로 3배 급증했다. 대출 규모는 지난 2016년 1조9900억루피아에 불과하던 것을 2018년 9조9300억루피아로 9배나 늘렸다. 총 예금 규모도 1조8400억루피아에서 4조300억루피아로 늘어났다. 당기순이익도 지난 3분기 기준 1336억루피아를 기록하며 1년 새 급증했다. 지난해 동기(685억루피아) 대비 2배가 높은 수치다.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인 1132억루피아도 넘어섰다.

BSI는 자산·대출·당기순이익을 공격적으로 늘리면서 리스크는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실제 BSI는 부실채권(NPL)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지난 2017년 9월 기준 1.13%이던 NPL비율을 2018년 9월 0.82%까지 낮추기도 했다.

NPL비율 감소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대형은행 현지법인들 중 유일하다. 최근 인도네시아 경기부진으로 인도네시아 내 금융사의 NPL비율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탓이다.

변 법인장은 “인도네시아 내 한국기업 수가 적어 영업 풀(Pool)이 작았다”라며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자 직원, 고객 모두 현지화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최근 가시적인 성과로 돌아오고 있어 현지화에 더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수마트라 섬 내 메단(Medan)지점을 하나 개설했다. 보르네오 섬을 제외하면 인도네시아의 큰 섬에는 모두 자리를 잡은 셈이다.


■계열사 협업·디지털화로 새판 짠다

BSI는 그룹계열사 간 협업과 온라인 시장 구축에 주력할 계획이다. 앱 구축·보급으로 모바일뱅킹 시장을 선도하고, 신한금융투자인니법인, 신한카드인니법인, 신한자산운용인니법인과의 협업을 늘려 인도네시아 내 입지를 넓힐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인터넷 환경이 급속 성장하며 현지 은행업계의 디지털 채널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인도네시아 내 2만5000개 정도의 영업점 중 지난 한 해 동안 350개가 줄어들었다. 반면 지난 2015년 10%에 불과했던 ATM을 포함한 디지털 채널은 올해 53%까지 치솟았다. BSI는 최근 OJK로부터 모바일뱅킹앱 라이선스를 승인받고 앱(가칭 쏠)을 구축 중이다. 바이오 인증, 모바일 OTP 도입으로 사용자 편의를 개선하고 간편이체, 앱 출금 서비스로 이체·출금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인도네시아 모바일 소비자 금융사인 아꾸라꾸(Akulaku)와 디지털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제휴도 체결했다. 핀테크 스타트업 기업인 아꾸라꾸는 모바일 앱 다운로드 2000만, 등록 고객 1300만명, 월 활성고객 300만명을 보유한 인도네시아 선두 모바일 금융사다.

변상모 법인장은 “아꾸라꾸의 방대한 고객정보와 신한은행의 빅데이터 분석 및 디지털 경쟁력을 결합하면 시너지가 예상된다”며 “첫 공동 금융상품으로 지난 10월 말 아꾸라꾸 추천 고객에 BSI가 대출을 지원하는 ‘채널링’을 출시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BSI는 이번달부터 아꾸라꾸 고객의 빅데이터 분석도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과 공동 마케팅에도 나설 계획이다. 사기방지 및 신용평가시스템(CSS) 개선작업도 공동 진행한다. 신한금융투자, 신한자산운용, 신한카드 등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신한금융그룹 계열사와의 시너지 창출에도 힘쓴다. BSI는 신한금융투자 인니법인, 신한카드 인니법인과 월 1회 정기 회의를 통해 협력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있다. 신한카드 인니법인과는 BSI 거래기업에 법인카드를 발급 할 수 있도록 협업을 추진 중이다.

고객 대출금 일부는 SIF가 취급하고 일부는 신한카드 인니법인이 취급하는 조인트 파이낸스 상품도 출시, 올해부터 판매할 계획이다. 또 신한금융투자·신한자산운용 인니법인과의 협업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우량 펀드를 구성, 한국 고객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변상모 법인장은 “인니시장에서 후발주자로 진출했지만, 그룹 계열사 간 협업으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며 “제약 조건을 하나씩 해소하며 성장한 만큼 앞으로도 전체 그림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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