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로 시작한 살풍경한 연초, 나고 드는 이 모두 가치는 여전

제철까지 기다릴 수 없는 냉혹한 경제상황에 움츠러드는 금융권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한겨울에도 딸기와 수박, 포도 등 여름 과일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마트나 시장의 판매대에 차고 넘치는 과일들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제철’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봄이 무르익어야 봄 과일이 장에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고 장마를 넘겨야 여름 과일이 좌판에 깔렸지만, 이젠 비닐하우스와 품종개량 등으로 사시사철 먹고 싶은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장년에 접어든 사람들의 추억의 한편에는 배꽃 흐드러지게 핀 봄날의 배밭과 긴 장마가 똬리 틀기 직전 빨갛게 익은 딸기밭, 그리고 초여름 지나 단물 함빡 머금은 복숭아밭의 풍광이 빛바랜 사진마냥 차곡히 쌓여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제철 과일을 내던 노지의 밭에선 청춘들의 사랑도 함께 익어가고 있었기에 추억의 농도는 다 익은 과일의 짙은 향기만큼 짙게 배어 있으리라.

하지만 제철을 잃은 과일이 지천인 세상에선 추억 속에 담겨 있는 과일만큼 단 맛이나 향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하늘과 땅의 기운에 사람의 노력이 보태져 빚어낸 제철 과일에선 조화로운 맛을 기대할 수 있지만, 먹고 싶을 때 원하는 과일을 취할 수 있는 편리함을 주는 세상에선 그 조화까지 담아내지 못한 결과라 생각한다.

소설가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조숙’이라는 제목의 수필이 실려 있다. 제철보다 일찍 익은 배를 먹었는데, 빛깔만큼 충분히 맛을 내지 못해 서운했다면서, 조숙한 과일을 요절하는 천재에 빗대 적은 글이다. 물론 이태준은 이 글에서 나이 들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자신의 욕심을 솔직히 드러낸다. 그 심정은 “적어도 천명을 안다는 50에서부터 60, 70, 100에 이르기까지 그 총명, 고담의 노경 속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농익은 능금처럼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보고 싶은 것이다”라는 문장에 처절하게 담겨져 있다.

연전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한 정재찬 교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글에서 정 교수는 이형기의 ‘낙화’와 복효근의 ‘목련후기’ 등의 시를 인용하면서 꽃이 지는 모습을 인생에 비유하며 뒤안길에 접어든 인생의 고귀함을 논하고 있다. 한창 때 떠나는 낙화는 물론 낙엽까지 그 처연함 모습 속에서 가치를 발견해내는 그의 눈길이 돋보이는 글이다.

동백처럼 한 번에 가는 꽃이 있고, 산수유처럼 배경처럼 존재하는 꽃이 있고, 목련처럼 지고 난 모습이 추한 꽃도 있다. 하지만 동백이나 산수유나 목련은 모두 제 모습을 살면서 한껏 자신을 과시했던 꽃들이다. 그 겉모습만으로 가치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글의 말미에서 정 교수는 “아무래도 인간은 그다지 현명하지도 의지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멋지게 떠나는 것까지 바랄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멋지게 떠난 이들이 박수를 받는 것일 게다. 박수칠 때 떠나라 하지 말자. 떠나는 모든 이에게 박수를 보내자. 다만 박수칠 때 떠나는 자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자”라고 쓰고 있다.

2019년, 새해 들어 금융권은 명퇴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희망자 숫자가 ‘많네, 적네’하며 살풍경의 모습을 전하는 기사도 제법 눈에 뛴다. 이태준의 글에 등장하는 농익은 맛을 내는 나이의 직원들이 그 대상이다. 극심한 불경기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경제상황이 이들을 제철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내보내게 한 것일 게다.

그래서 정 교수의 글처럼 퇴장을 선택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목표에 미달했다고, 명퇴를 선택하지 않은 이들에게 뭐라 하진 말자. 그들에게 ‘제철’이 남은 기간 중에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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