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최고 수준 이율보증형 상품 공격 판매
운용수익 확보 차원…이차손 위험 상존 우려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대만 푸본생명이 3000억원을 증자하며 적자 보험사이던 현대라이프생명의 최대 주주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푸본현대생명이 퇴직연금 자산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근로자에게 돌려줄 퇴직급여를 굴려 높은 투자수익을 챙기려는 전략이다. 저축성보험으로 몸집을 키우던 중국 안방보험 계열의 동양·ABL생명과 비슷한 행보다. 문제는 역마진 위험이다. 갑작스레 퇴직연금 자산이 4조원 이상 불어난 상황에서 자산운용의 손실을 낼 경우 그 피해도 막대해진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사업자인 생명보험 11개사의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타사 상품제공 금액은 10조5923억원이다. 이 가운데 푸본현대생명이 차지하는 금액은 4조240억원(38.0%)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인 한화생명(1조1685억원)보다 3.5배 높고, 1조원 안팎의 실적을 낸 흥국·미래에셋·교보·삼성생명 등보다 4배 이상 많이 팔았다.

타사 상품제공 금액은 푸본현대생명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상품을 다른 퇴직연금사업자가 대신 판매한 실적이다. 보험사의 상품을 은행이 팔아주는 방카슈랑스와 비슷한 형태다. 푸본현대생명이 타사에 제공한 퇴직연금 상품은 업계 최고 수준인 2.42% 금리(지난해 12월 말 기준)의 1~3년 만기 이율보증형 상품이다. 이는 시중은행이 퇴직연금에서 취급하는 2.05~2.1%대 정기예금보다 훨씬 높다.

원리금 보장 상품은 금리 0.1%포인트 차이로 사업자간 상품제공 실적이 달라질 정도로 금리민감도가 높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자사 정기예금 대비 높은 이율의 보험·증권사 이율보증형 퇴직연금 상품을 많이 취급한다. 지난해 말 푸본현대생명이 타사 상품제공으로 거둔 실적의 절반은 신한(6977억원)·우리(5877억원)·KEB하나(5310억원)·KB국민(4636억원)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서 비롯됐다.

푸본현대생명이 타사 상품제공에 공격적인 영업을 할 수 있던 이유는 현대차그룹 덕분이다. 퇴직연금사업자가 다른 퇴직연금사업자에 상품제공을 할 수 있는 금액은 직전년도말 자산관리적립금의 30%까지다. 푸본현대생명(당시 현대라이프생명)의 지난 2017년 자산관리적립금은 2조3543억원이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조3000억원은 현대차그룹의 퇴직연금 물량에서 비롯됐다. 현대차그룹만 있으면 푸본현대생명은 얼마든지 퇴직연금 자산을 불릴 수 있다는 뜻이다.

푸본현대생명은 불어난 퇴직연금 자산으로 자산운용수익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 푸본현대생명의 퇴직연금 자산은 총 6조5267억원으로 이 가운데 확정급여형(DB) 비중은 98%에 달한다.

DB는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가 미리 정해진 상품이다. 금융사가 자산운용을 아무리 잘해도 퇴직연금에 약속한 이율 이상을 얹어줄 필요가 없다. 푸본현대생명이 퇴직연금 자산의 보증이율보다 1%포인트만 더 자산운용 수익을 내도 약 650억원의 운용수익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전체 퇴직연금 자산에서 떼어가는 약 200억원 가량의 자산관리·운용수수료는 덤이다.

대만 푸본생명이 지난해 9월 약 3000억원의 증자를 단행하며 옛 현대라이프생명의 최대주주가 된 것도 현대차그룹을 활용한 퇴직연금사업에 주력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현대라이프생명은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지난 2012년 이후 약 5년간 적자에 시달리다 결국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보험판매채널마저 없앴다. 사실상 보험사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역마진 위험이다. DB 중심의 퇴직연금 자산은 자산운용 수익률이 바닥을 칠 경우 손실이 막대해질 수 있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은 퇴직연금의 원리금보장 비중이 높을수록 보험사의 건전성지표인 RBC(지급여력비율)에 단계적으로 신용위험과 시장위험을 가중시키기로 했다. 시장상황에 따라 보험사의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보험사 퇴직연금부서 관계자는 “리스크에 민감한 회사일수록 타사 상품제공 금액을 늘리는데 소극적이다. 한 해 동안 고금리로 4조원의 퇴직연금 상품을 타사에 제공했다는 것은 자산운용에서 역마진을 내지 않을 수 있다는 대단한 자신감”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푸본생명의 운용노하우와 자금이 뒷받침돼야 공격적 운영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푸본현대생명은 푸본생명의 증자에 힘입어 지난해 말 기준 RBC비율이 300%에 근접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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