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조화·평화 등의 달콤한 단어, 과정보다 결과가 먼저 다가와…
다른 관점 요구하는 리더 생각 따르려면 동사로 세상 느껴야 가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균형과 조화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긍정적 가치를 느끼게 하는 낱말들이다. 무게중심이 잘 맞는 균형점이나 황금비율로 배치된 균형 잡힌 회화나 조각,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 적절하게 만나서 이루는 균형은 모두 사람에게 편안한 감정과 안정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조화도 마찬가지다. 물건이나 사람, 상황의 조화는 모두 긍정적인 에너지로 연결돼 더 나은 단계로의 진행까지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균형이나 조화, 안정 등의 단어는 모두 세상을 명사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단어들의 특징이 달성된 결과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도록 작용하는 탓이다. 화목하고 조화롭고 균형이 이뤄진, 그래서 위험하지도 않고 모두가 편안하고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 거친 일상을 사는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그런 그림말이다.

평화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평화는 물론 사회, 국가 더 나아가 국가 간의 평화는 모두 다툼이나 전쟁이 없는 상황을 그리게 돼 있다. 따라서 평화는 우리에게 지극히 정태적인 이미지로 다가선다.

하지만 위 단어들은 결과를 통칭하는 낱말이지만, 그 결과를 도출하기까지는 너무도 고되게 거친 과정을 담고 있는 단어들이다. 즉 위 단어들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바라볼 경우, 낱말 하나하나의 상황에 다가서는 과정의 이미지는 결과와 다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경제활동에서 각종 주체들이 균형을 이루는 상황이나 물가를 안정시키고 실업률을 최소화시키면서 경기를 상승시키는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경제 상태는 경제교과서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일이지 현실경제에서는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이상적 과정인 것이다.

비단 경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평화. 모든 인류가 간절하게 원하는 평화를 일궈내는 과정은 거친 다툼과 전쟁, 혹은 각종 으름장과 경고 등이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아주 최소한의 낭만적 얼굴만 평화로 비춰줄 뿐이다. 역사를 기록한 이래 전쟁이 없었던 기간이 불과 몇 십 년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평화의 길이 얼마나 고된 길인지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단어들을 동사적으로 바라보기보다 명사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 과정의 고단함을 미리 떠올리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미리 간난신고의 길에 주눅 들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는지도 모른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시멘트와 콘크리트 및 쇠덩이로 이뤄진 도시의 반대말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거칠고 불편한 야생 그대로의 상황이다. 낭만적으로 그리는 ‘힐링’의 원천으로서의 자연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2019년 모든 경영자들은 신년사를 통해 사고의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방점이 찍혀 있는 대목은 지금과 다른 관점의 필요성이다.

다른 관점은 명사로 세상을 이해해선 도달할 수 없는 범주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사로 세상을 관찰해야 비로소 다른 관점이 보이게 되고 사고의 전환도 가능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균형은 순간이다. 특히 시장 속 균형은 한 순간 존재하면 바로 그 의미는 상실한다. 인간의 욕망이 끊임없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시장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나선다.

이처럼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일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세상은 불균형하다고 말해야 한다. 조화와 안정, 평화도 반대의 경우가 일상인 세상이다. 따라서 오감을 세워 느껴야 거칠고 낯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이제 동사로 세상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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