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인증 기술과 업체 지정해 자동화기기에 적용 요구
첨단기술 도입하면 단가 올라가지만 ‘울며 겨자먹기’ 입찰

<대한금융신문=문지현 기자> 은행권의 현금자동입출금기(이하 ATM) 구매 입찰과정에서 여전히 갑질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최근 ATM 등 자동화기기를 입찰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기기의 가격을 낮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은행권에는 ATM에 통장이나 카드 없이 손가락 정맥인증, 홍채인증 등 생체인증 기술을 도입해 간편인증을 구현하고자 하는 니즈가 늘고 있다. 생체인증 기술을 도입하면 추가 솔루션을 넣는 과정에서 당연히 ATM 기기의 단가가 오르게 된다.

문제는 ATM을 도입하려는 은행들이 특정 업체의 생체인증 솔루션을 지정해놓고 ATM에 이를 적용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첨단기술 적용으로 늘어난 기기의 단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ATM 납품 업체들은 은행의 요구에 따라 추가 비용을 들여 생체 인증수단까지 도입했지만, 추가 솔루션 비용뿐만 아니라 기기 자체 원가 수준도 받지 못하는 셈이다.

ATM 제조업체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자동화기기에 여러 기능을 추가하게 되면서 기기 원가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사 입장에서는 수백 수천 대 기기의 납품 문제가 달려있어 최저 입찰로 가격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은행들이 인위적인 입찰 경쟁을 조성해 자동화기기 제조업체들의 납품 단가를 낮추는 일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 국내 은행들이 역경매 방식으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납품 가격을 낮췄다는 ‘갑질’ 의혹 혐의를 받았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 은행들을 중심으로 조사에 착수했으며 이와 관련해 은행연합회 등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최근 자동화기기 시장은 ATM이 축소되고 각종 첨단기술이 추가된 STM으로 시장이 옮겨가는 추세지만 입찰 과정은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979년 처음으로 ATM이 시중은행에 설치된 이후 기기 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2015년을 정점으로 인기가 시들해졌으며 최근 은행들은 ATM 신규 설치를 대폭 줄이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이 운영하는 ATM 수는 지난해 6월 2만3774대로 전년 동기(2만5300) 대비 약 6.03% 감소했다.

반면 지난해 3분기 말 은행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STM을 포함한 고기능 무인화기기가 설치된 은행권 점포는 124곳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무인 자동화기기를 각각 47개와 31개를 보유했으며 국민은행 27개, 부산은행 14개 등이다.

지난해 2분기 말 87곳과 비교하면 3개월 새 40%나 증가한 수치다. 은행권에선 인력과 인건비를 줄일 수 있어 고기능 무인화기기 설치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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