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금고 두고 지방은행과 경쟁하는 시중은행들 비판
강자는 현 상황을 유지하려하지만 그만큼의 덕목도 필요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15세기, 지중해 상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들이 대항해 시대를 개막했었던 이유는 지중해를 장악한 세력과 다투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힘의 근거는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 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낼 수 있었던(레콩키스타:국토회북운동), 종교로 총화를 모아낸 리더십과 군사력이었다. 당시 지중해 바깥 대서양은 미지의 세계였고, 그 가능성에 대해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탈리아 반도의 주요 도시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이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미지에 대한 도전 말고는 전혀 없었다.

그 결과 희망봉을 보게 되고 인도로 가는 길이 열렸으며, 동방의 향신료들이 새로운 바닷길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한 투르크가 좌우하던 서구 무역 시장에 지각변동이 발생한 것이다. 시각을 좀 더 틀어 서쪽을 향하면서 유럽은 뜻밖에도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액튼 경은 그의 두 번째 책 <근대역사 강의>에서 “포르투갈인은 바다가 제약이 아니라 인류를 이어주는 보편적 수로라는 사실을 이해한 최초의 유럽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16세기 이전의 유럽인들의 세상 끝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즉 지브롤터 해협이었으나 자원하나 없었던, 인구는 100만에 지나지 않았던 소국, 포르투갈은 그 기둥 밖의 대서양에서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이다.

카스티야와 아르곤의 연합왕국이었던 스페인의 경우도 레콩키스타를 완료하기 이전까지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으나 무어인을 물리친 자신감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콜럼버스를 통해 신대륙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두 국가의 모험과 도전은 가장 국력이 강할 때 이뤄진 것이 아니다. 변화를 도모해야 할 절박성 내지는 내적으로 충만된 에너지가 적절한 시기에 외부로 표출된 것이다.

김태오 대구은행장이 최근 시중은행들을 향해 작정한 듯 쓴 소리를 했다. “대형 시중은행들이 지방자치단체 예금을 유치하려고 지역은행과 경쟁하기보다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어떠냐”며 “이들 은행이 협력기금을 많이 주겠다며 지자체 예금유치에 뛰어들어 지역은행을 어렵게 만든가”고 말했다.

자산규모가 400조원이 넘고 연간 이익만 몇조에서 수천억을 내는 은행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지방은행으로서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 사이즈에 맞는 영업의 규모와 방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김 행장의 의도된 발언대로 시중은행들이 지자체 금고를 포기하고 해외사업에 전념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해외사업에 더 많은 정성을 들이면서 국내사업도 강화할 것이다. 이유는 지금까지 안전하게 영업을 해왔던 바닥인데, 굳이 눈에 보이는 이익을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가 중국 씨씨티비에서 제작한 <대국굴기>에서 밝힌 다음의 글에 답이 있는 것 같다. “만약 당신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면 아마 세상의 변화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타고 있는 배가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길 바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암초는 곳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결국은 노선을 바꾸게 되는 것이 역사가 주는 지혜이지 않을까 싶다.

19세기 영국의 수상 윌리엄 글래드스턴은 “강대국은 반드시 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강대국은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합리한 세상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사다리 끝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변화를 외면하고 독주할 때 그 사다리를 흔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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