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올리고 환급금 낮춘 꼼수 개정 지적
이득만 수백억…보험금지급분쟁 가능성 다분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오는 4월부터 자녀보험의 보험료는 오르고 중도 해지 시에 받을 수 있는 환급금은 적어지는 보험상품 개정이 이뤄진다.

이번 개정으로 보험사들이 얻는 이득은 수백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태아 때부터 자녀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의 민원에서 발생한 상품 개정이 보험사의 배만 불려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1일을 기점으로 자녀보험의 보험료 납입구조는 가입시점부터 출산 예정일까지의 ‘태아보험’과 출산 이후부터 납입만기까지의 ‘어린이보험’으로 이원화된다.

현재 자녀보험은 가입시점부터 납입만기까지 내야할 보험료가 동일하다. 대신 보험사들은 보험료만 내고 보험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태아보험 기간만큼 전체 보장기간을 늘려주고 있다.

반면 이번 상품개정은 태아보험(특약)을 분리한다. 보장기간이 20년인 자녀보험을 출산 예정일 6개월 전에 가입했다면 기존에는 20년 6개월을 보장했지만, 내달부터는 6개월의 보험료를 더 받고 태아 6개월, 어린이 20년을 보장하게 된다. 보장기간은 똑같은데 보험료만 더 비싸진 것이다.

보험 개정해 수백억 아낀 보험사

이번 상품 개정은 출산 전부터 자녀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금융감독원에 제기한 민원에서 비롯됐다. 자녀보험은 출산 전부터 보험료를 납입하지만 보험의 보장은 받을 수 없다. 태아 기간 동안만큼은 ‘빈껍데기’ 상품에 보험료만 내야하는 셈이다.

문제는 자녀보험을 중간에 해지하는 경우다. 자녀보험을 중도 해지한 가입자는 태아 기간 동안 낸 보험료를 보장기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돌려받을 수 없다.

이에 당초 금감원은 태아기간 동안 받은 전체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뺀 위험보험료를 돌려주라고 보험사에 권고했다. 당시 전체 보험사가 중도 해지한 자녀보험 가입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환급금 규모는 최소 4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보험사들은 태아보장에 대한 보험료는 빼고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맞섰다. 선천이상으로 인한 질병이나 소아 뇌성마비·암·뇌출혈 등은 태아 때 영향을 미친 질병이니 받은 보험료에서 그만큼 삭감하고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금감원은 이를 받아들여 태아 담보와 기타 담보(0세 이후)를 구분하라고 보험사에 지시했다. 이에 보험사들은 지난해부터 자녀보험에서 판매하는 담보(특약) 총 152개 가운데 56개 담보를 태아 보장으로 지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56개 질병·상해 담보는 태아 때부터 영향을 미쳤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은 결정으로 다음달부터 보험사가 자녀보험 가입자 중 중도해지 한 사람들에게 지급해야 할 환급금 규모는 기존 금감원 권고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게 됐다. 게다가 보험료는 더 받을 수 있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상품 개정으로 보험사에 수백억원의 이득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태아 보장으로 취급되는 담보가 많아질수록 보험사는 중도 해지하는 사람들의 환급금을 깎을 수 있고 새로운 가입자에게 보험료는 더 받는다”며 “이번 개정으로 보험사는 아무런 손해 없이 보장기간만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분쟁 소지 다분…일부 판매중지 결정도

태아 담보가 약관에 반영되면 기존보다 보험금 분쟁 소지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태아시기에 보험료를 받는다는 의미는 태아를 피보험자(사람)로 인식하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어서다. 이 경우 보험약관이 상위 법률을 어기는 상황이 된다.

임신 중 질병이 생길 위험에 대비해 가입하는 것이 태아 담보다. 그러나 현재 보험사들은 출산 전 태아의 질병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장을 해주지 않는다. 법률상 태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출산 이후 발생한 질병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태아 보험료를 받게 되면 태아 때 생긴 질병에 대해서도 보험금 지급 의무가 생길 수 있다. 만약 정밀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어나기 전부터 심장기형 확진 진단을 받게 된다면 가입자와 보험사는 언제 보험금을 지급할지를 두고 분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질병을 가진 채 태어나거나 사산할 경우라면 가입자는 보험금 청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태아보험료를 따로 받아 전체 보험료가 오른 것도 보험의 원칙과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아에게 보험료를 먼저 받은 만큼 태어난 시점(0세)의 보험료는 당연히 깎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은 앞으로 받을 보험료와 지급할 보험금이 맞아떨어지는 ‘수지상등의 원칙’으로 보험료를 매긴다. 태아에게 보험료를 더 받으려면 0세 아이의 보험료를 내려야 하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엄연히 분쟁 소지가 있는 상품개정을 금감원이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삼성생명을 비롯한 일부 생명보험사들은 4월 1일자부터 태아 담보 판매를 잠정 중지한다. 보험사들은 개정 이후 추이를 지켜본 뒤 판매 재개를 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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