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보험사 말만 들어주다 소비자를 등졌습니다. (자녀보험 상품 개정이)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많은 개정을 졸속으로 진행했을까요.”

자녀보험 상품개정을 바라보는 한 보험사 직원의 토로다.

오는 4월부터 자녀(어린이)보험이 완전히 바뀐다. 태아에 대한 보험료를 따로 받게 되면서 이전과 똑같은 상품인데 가격만 오른다. 이제 보험사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도 보험료를 받는 것이다.

태아는 법률상 보험금 지급의 대상(피보험자)이 될 수 없다. 법원도 ‘진통설’을 따른다. 규칙적인 진통을 수반하며 태아의 분만이 개시될 때 비로소 사람으로 인정한다.

태아에게 보험료를 받겠다는 건 피보험자도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껏 태아는 사람이 아니란 이유로 출산 전 질병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던 보험사들이 근 1년 만에 생각을 바꾼 것이다.

지난해 초 금감원은 자녀보험을 해지하는 가입자들에게 태아시기에 받은 보험료의 대부분을 환급해주라는 결정을 보험사에 전달한 바 있다. 보험사들은 극렬히 반대했다. 이제껏 받은 보험료에 태아에 대한 보장도 포함돼 있으니 그만큼은 빼고 주겠다는 주장을 펼쳤다.

금감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줬다. 요지는 자녀보험에서 태아 보장을 나눠보란 거다. 이후 보험사들은 자녀보험 전체 담보(특약)에서 3분의 1 가량을 태아와 관련된 담보로 분류했다.

태아 담보가 많아질수록 보험사는 금감원이 애초에 돌려주라 했던 환급금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태아 담보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자녀보험 판매에 열을 올렸던 손해보험사들의 입장이 크게 반영된 이유기도 하다.

결국 보험사들은 당초 수백억원에 달했던 환급금을 크게 줄이면서 보험료는 더 받는 성과를 얻었다. 보험사에겐 이득이, 보험소비자에겐 피해만 남았다.

오히려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 금감원이 지시했던 방안이 나았다. 보험사가 태아 때 받은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제외한 위험보험료만 환급하는 방법이다. 법적으로나 앞으로 발생할 보험금 지급 분쟁 차원에서 명확하다. 태아는 보험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보험사의 원칙도 지킬 수 있다.

금감원은 정말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윤석헌 원장 부임 이후 소비자보호 기조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금감원이다. 금감원이 생각하는 소비자 보호에 태아는 빠진 게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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