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업계 “계좌번호도 주민번호 역할 가능해”
FIU “현행법상 위배되지 않는지 상반기 확정 발표”

<대한금융신문=문지현 기자> 금융당국이 핀테크 업체들의 고객확인 절차에 은행 계좌번호 등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주민번호, 신분증 수집 등은 대면 서비스가 불가능한 핀테크 업체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금융거래보고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7월 1일부터 은행뿐만 아닌 전자금융업자와 자산규모가 500억 이상인 대부업자에게도 국제 기준에 따른 자금세탁방지(AML) 의무가 부과된다. 이에 따라 핀테크 업체들도 은행과 같은 수준의 고객확인 절차(KYC)를 거쳐야 한다.

문제는 주민등록번호와 신분증을 이용해 고객을 확인하는 과정이 추가되면 핀테크 서비스 확산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객확인이 어려운 미성년자나 외국인은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며 기존 이용자들도 주민등록번호와 신분증 사본을 일일이 전송해야 한다.

이에 토스, 카카오페이, NHN페이코 등 핀테크 업체들은 은행 계좌번호가 주민등록번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방안을 금융위원회 산하 기구인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요구 중이다.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다하는 은행에서 발급된 계좌번호 자체가 개인의 고유식별번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토스, 카카오페이 등은 선불전자지급수단으로, 은행계좌를 이용해 결제 및 송금이 이뤄지는 서비스다.

핀테크 업계는 의심되는 거래를 발견하는 즉시 금융당국에 은행 계좌번호와 주소, 생년월일, 성별, 이름 등을 제출해 의심 거래자를 특정해 낼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대부분의 핀테크 기업들은 서비스 이용을 위해 고객의 주소, 생년월일 등의 부가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토스 관계자는 “은행 계좌도 자신만 보유하고 있는 고유번호 중 하나다. 수십년 전부터 철저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지켜온 은행에서 개설해준 계좌인데 이 자체가 인증수단이 될 수 있다”며 “현재 페이코, 토스, 카카오페이 등이 필두로 핀테크협회, 인터넷기업협회 차원에서 당국에 지속 건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5년부터 은행은 신규 계좌를 개설할 때 실제 소유자를 확인하고 정보 공개를 거부하면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등 강화된 계좌개설 절차를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은행 계좌 발급 시 의무적으로 금융거래목적확인서를 작성해야 하며 재직증명서와 사업자등록증 등 증빙 서류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기관의 계좌번호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들의 요구가 현행법상 가능한 일인지 판단하기 위해선 들여다봐야 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금융정보분석원 관계자는 “모든 전자금융업자에 대해 똑같은 수준의 고객확인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핀테크 업체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인증절차를 요구하고 있는 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상반기 내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 있는 고객확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핀테크 육성 정책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최근 전자금융업 체계를 변경해 간편결제 수단의 이용한도 확대, 해외결제 허용, 대중교통 결제 지원 등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핀테크 업체들의 자금세탁방지 의무 시행을 위해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AML 공동대응시스템 구축을 논의 중이다. 개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자금세탁방지 의무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공동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관련 핀테크 기업들의 부담이 최소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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