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출전으로 언론·한국은행 홈피에 소개
미국식 번안, 한글 중역하면서 오류 잡히지 않고 계속 사용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금융투자의 금언 중에 ‘달걀을 한 바구니 안에 집어넣지 말라’는 말이 있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리스크를 줄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출전을 우리는 <돈키호테>로 알고 있다. 이어령 박사가 펴낸 <문장백과대사전>에 그리 돼 있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이를 인용한 결과다.

사전에 옮겨져 있는 문장은 이렇다. “현명한 사람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으며 달걀을 모두 한 바구니 안에 집어넣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럼 이 문장의 출전은 어디일까. 그건 세르반테스 소설 <돈키호테>의 영문판이다.

그런데 스페인어판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달걀이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현재 완역돼 국내에 출판돼 있는 두 편의 판본(시공사, 열린책들 판본) 모두 그렇다. 이 번역본 중 시공사의 책에는 “위험이 희망보다 앞설 때는 기다린다는 것 또한 분별이 아닌 것입니다. 내일 위해 오늘 발길을 멈출 줄 알고, 하루 사이에 모든 모험을 다 치러내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것이야 말로 바로 현자가 행할 바입니다”라고 돼 있다.

열린책들 판도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삼갈 줄 알고 하루에 모든 것을 모험하지 않습니다”이다.

이 내용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달걀 바구니로 미국식 번안이 이뤄진 것이다. 물론 ‘한 바구니에 달걀을 넣지 말라’는 문장은 ‘하루에 모든 것을 모험하지 말라’는 문장보다 메시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더 분명하다. 하지만 하루에 모든 것을 모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보다 중의적이며, 품고 있는 뉘앙스 자체도 다르다. 전자는 정태적인 입장에서 힘의 안배를 말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시간의 개념이 개입돼 동적인 차원에서 큰 그림에서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모든 일을 하루에 모험하려 하지 말라는 문장에는 ‘(무엇인가를) 하루에 다 할 수 없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라톤처럼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인생을 100미터 달리기하듯 달리면 전체 거리를 다 달릴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바구니에 달걀을 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깨질 수 있으니 함께 담지 말라는 것이지,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담지 말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미국식 번안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속담이 16세기 중반 이후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덕분일 것이다. 이 속담을 알고 있던 미국의 번역자가 세르반테스의 문장을 번역하면서 그 문장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무척 높아 보인다.

그런데 스페인어를 영어로 옮기고, 그리고 그 영어를 우리말로 중역된 문장은 여전히 돈키호테의 언어로 유통되고 있다. 언론은 물론, 한국은행의 홈페이지에도 이 문장은 버젓이 <돈키호테>라는 출전이 달린 상태에서 사용되고 있다. 2007년경에 작성된 경제컬럼 ‘돈키호테-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오래전에 쓰인 글이니 오류를 잡을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경제교육 차원에서 ‘달걀 한 바구니론’을 사용하고 싶겠지만, 하루에 모든 일을 하지 말라는 원문의 뜻을 감안한다면 더 이상 세르반테스의 문장으로 이 글을 사용하면 안 될 일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