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2 06:25 (월)
[수불시네마기행8] 와인 만들고 남은 부산물 증류해서 만든 ‘그라파’
[수불시네마기행8] 와인 만들고 남은 부산물 증류해서 만든 ‘그라파’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3.25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흙냄새 물씬 나는 이탈리아 북부 전통주, 우리 소주처럼 즐겨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힐링의 술로 ‘그라파’ 등장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1932년과 1957년에 각각 영화로 만들어져 발표된 바 있다. 사진은 두 편의 영화 포스터 (자료 : 네이버 영화)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1932년과 1957년에 각각 영화로 만들어져 발표된 바 있다. 사진은 두 편의 영화 포스터 (자료 : 네이버 영화)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1932년과 1957년에 각각 영화로 만들어져 발표된 바 있다. 사진은 두 편의 영화 포스터 (자료 : 네이버 영화)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1932년과 1957년에 각각 영화로 만들어져 발표된 바 있다. 사진은 두 편의 영화 포스터 (자료 : 네이버 영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을 만들 수 있는 재료 중 포도만큼 버리는 것 없이 다 쓰는 과일도 없을 것이다. 우선 포도즙을 내려 와인을 빚고, 그 와인을 증류하면 코냑과 알마냑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브랜디가 만들어진다. 이게 다가 아니다. 와인을 거르고 난 찌꺼기를 알뜰히 모아 증류하면 ‘그라파(grappa)’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국민주가 나온다. 즉 물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까지 발효를 시켜 새로운 맛과 향을 가진 브랜디류의 술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흔히 과일을 증류시킨 술, 특히 80% 이하의 알코올 도수로 증류한 다음 35~40%의 도수로 병입한 와인(또는 다른 과일) 증류주를 브랜디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이 같은 성격의 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코냑과 알마냑 지방에서 나는 브랜디처럼 이 나라에도 ‘아르첸테’라는 브랜디가 있음에도 포도 부산물(퍼미스)을 이용한 증류주가 더 사랑 받는다고 한다.

더욱이 와인을 증류해서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브랜디와 달리 그라파는 포도의 껍질과 줄기, 씨앗 등 발효하고 남은 부산물을 증류한 탓에 흙과 나무냄새가 더 강하게 나는 술이다. 그래서 브랜디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라파의 짙은 향을 선호하지 않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리가 소주를 즐기듯 이 술을 식후주로 즐겨 마신다고 한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생산하는 그라파는 부산물로 만들었지만 여타 브랜디와 어깨를 같이할 수 있을 정도로 고급술로 대우받는다.

이유는 공정을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고, 한 땀 한 땀 증류해서 더욱 고급스럽게 그라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포도 부산물을 증류해서 얻은 바가세이라(포르투갈), 마르크(프랑스), 오루호(스페인) 치쿠디아(그리스) 등과 지위 자체가 다르다. 특히 오크통에서 5~6년 숙성한 술은 그 향이 더욱 그윽해서 프랑스산 고급 브랜디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

문학작품과 영화 속에서 그라파가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다. ‘몬테그라파’. 만년필 브랜드로도 유명한 이 이름은 1차 대전 당시 격전지 중 한 곳이다. 헤밍웨이는 베네치아 인근에 위치한 바사노 델 그라파라는 지역에서 응급차 운전병으로 이 전쟁에 참전한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무기여 잘 있거라>이다.

유럽 대륙이 각종 과일로 만든 발효주와 증류주가 지천이어서일까. 이 소설에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술들이 등장한다. 그런 가운데 그라파는 전투에 지친 군인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레드릭 헨리,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전투에서 부상당한 뒤 밀라노로 후송되는 과정에서 술을 찾는다.

물론 코냑을 찾지만 전시에 원하는 술을 제 때 마실 수는 없는 법. 어렵게 그라파를 구해 파노라마처럼 전투장면을 회상하면서 술을 들이킨다. 그리고 밀라노 역에 도착한 헨리는 탈영을 감행한다.

이른 아침 밀라노 역 근처의 한 카페, 커피와 빵을 먹고 있는데, 카페 주인은 헨리에게 그라파를 권한다. 그리고 장소의 안전함을 재차 확인한다. “같이 그라파 한잔 합시다.” 헤밍웨이는 이 장면에서 그라파에게 신뢰라는 상징을 부여한 것이다.

그라파와 주박소주
발효주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증류주를 만든 술 중 주박소주라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술을 제조할 수 있는 원료가 부족해지자 술지게미(주박)를 증류해서 소주를 내리면서 탄생한 술이다. 물론 이 술은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전시통제경제가 만든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라파의 기원과 관련, 전해지는 전설도 군대와 연관된 유력한 이야기가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다스리던 기원후 2세기 경, 이집트에서 어떤 로마 군인이 증류기를 훔쳐와 포도껍질만으로 증류해서 그라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13세기를 전후해서 연금술사들의 노력의 결과물로 증류기술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의 신빙성은 낮다. 하지만 군대와 전쟁 등 남자들의 거친 세계는 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주박소주를 만들진 않는다. 희석식 소주가 대세인 상황에서 주박소주를 만들 경제적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웃 일본에선 긴조주를 만들면서 부산물로 나오는 지게미를 증류해서 ‘긴조 그라파’라는 이름의 술을 내고 있다. 소주와 다른 맛과 향을 주기 때문에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의 그라파를 자국의 전통주와 연결시켜 브랜드를 만들어 인지도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볼만한 시도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