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압박에 역마진나도 사업비차익마저 포기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방카슈랑스(은행 내 보험판매) 채널에서 저축성보험을 판매하기 위한 보험사들의 제살깎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 상품은 보험사의 수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실적을 채우기 위해 은행에 수수료수입만 퍼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험사들은 은행이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 모집수수료로 계약체결비용의 최고 99%를 지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동양생명 ‘엔젤행복저축보험’과 미래에셋생명 ‘변액저축보험’이 계약체결비용의 99%를 모집수수료로 준다. 이외에도 한화생명의 ‘바로연금보험’(98%), KB생명의 ‘골든라이프플래티넘연금보험’과 흥국생명 ‘베리굿변액저축보험’(95%) 등의 상품이 높은 모집수수료를 은행에 쥐어주고 있다.

보험사들이 은행에 판매를 대가로 주는 모집수수료에는 계약체결비, 유지·수금비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유지·수금비는 모집수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가 안 될 정도로 적다.

즉 보험사들은 사업비 마진의 1~5%만 남겨두고 은행에 전부 퍼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전략적으로 판매량을 늘리고 싶은 상품에 계약체결비를 크게 책정, 의도적으로 실적을 키운다.

금융감독원의 상품 인가가 자율규제로 바뀌면서 보험사마다 매월 탄력적으로 계약체결비용을 변경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매 상품 개정마다 금감원의 인가가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상품만 심사를 받다보니 한 보험사가 계약체결비용을 올리면 다른 보험사도 상품 개정을 통해 따라 올리는 구조가 됐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계약체결비용 1%포인트 차이로 한 달 판매실적이 판가름 날 정도로 은행에선 모집수수료를 많이 주는 보험사의 상품만 판다”며 “은행이 따로 요구를 하지 않더라도 실적을 채우기 위해 보험사가 알아서 모집수수료를 더 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행 법령상 방카슈랑스 상품의 모집수수료 책정에 대한 명시적 조항은 없다. 다만 보험사는 상품별 보험료나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최적사업비 한도 내에서 적정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모집수수료를 책정해야 한다.

방카슈랑스 채널이 처음 생긴 2003년경에는 금융당국이 모집수수료를 ‘계약체결비용의 90%’로 상한을 두는 등 거대 판매채널인 은행이 과도한 수수료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문제는 방카슈랑스에서 주로 판매되는 저축성보험의 경우 보험사에 역마진만 안겨주는 상품이란 점이다.

보험사는 저금리로 자산운용수익률이 나빠지며 보험료 규모가 큰 저축성보험을 팔아 자산을 키우는 ‘볼륨 영업’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또 오는 2022년 도입하는 새 회계제도(IFRS17)에서는 저축성보험이 매출로 인정되지 않고, 가입자에게 돌려줘야할 부채가 된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저축성보험 상품을 팔아서는 어떤 마진(수익)도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면서도 “그렇다고 전년대비 수입보험료가 크게 빠지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의사결정권자는 없다. 마진을 포기해서라도 실적을 채우기 위한 영업이 지속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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