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은행들의 이름이 앞으로 몇 년 뒤쯤이면 혹시  ‘OO디지털’이나  ‘OO테크’처럼 IT기업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으로 바뀌게 될 것 같다. 리딩쟁탈전이 치열한 금융권에 은행장이 새로 선임될 때마다 저마다 ‘디지털 회사’로의 전환을 힘주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취임한 신한은행의 진옥동 은행장은 물론 KEB하나은행의 지성규 은행장도 모두 한목소리로 ‘디지털’을 외치고 있다. 마치 전쟁터에 나선 지휘관처럼 ‘디지털 대전’을 준비해야 하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더 이상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옥동 신행은행장은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에 이르기 위해서는 조직이 디지털을 향해 변신해야 하고 이를 위해 디지털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디지털 회사로의 전환을 선포하면서 “오는 2020년까지 1200명의 디지털 전문 인력을 육성해 은행에 디지털 유전자를 전파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맞다. 대세는 ‘디지털’이다. 디지털과 모바일, 그리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미래 금융환경의 플랫폼이자 메커니즘이 될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사람 손에 의존하는 금융회사라는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  500년 전쯤에도 이와 유사한 정도의 충격을 준 격변의 소용돌이를 인류는 경험한 바 있다. 

입으로 건네지는 말에 의존하던 인류가 말 대신 기술을 이용하면서 지식의 급격한 확산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활자를 포함해 구텐베르크의 이동식 금속활자는 글쓰기를 문화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이 과정은 암기와 암송, 수사학을 중요시 여겼던 구어 중심의 사회를 활자화된 문서를 중심에 두는 문어 사회로 급격하게 이행시켰다. 즉 더 이상 ‘예전의 일’이라든지 말의 애매함, 또는 주관을 읽어내야 하는 구어가 아니라 확실하고 정확도를 중요시하는 문서 중심의 사회로 넘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관성은 객관성으로 대체됐고, 말 보다 문서가 권위를 가지게 됐으며, 인쇄된 종이가 인류의 마음을 대변하는 사회로 급격하게 이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한 세대의 노력으로 결코 추월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 앞에 복종하듯 변혁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사회로 움직이려하고 있다. 더 이상 은행을 은행이라 부르지 않아도 되는 사회,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결함 내지는 부족함을 채우는데 이용되던 기술이 전면에 나서서 인간의 노동력과 정신의 표현 등을 대체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500년 전과 다르게 현재의 이행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기계와 기술의 변화 속도를 놓친 이후 줄곧 인간은 보이지 않고 기술만 사람들의 눈에 남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변화가 낯설기만 하다.

그 낯섦이 껄끄러움으로 남는다. 은행을 디지털회사로 부르고 싶지 않은 저항감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금융거래의 상당부분을 지금도 처리해주고 있는 이동통신사들을 은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듯이 말이다. 옷감을 살피기 위해 쓰다듬다 결이 바뀐 부분을 만질 때 느껴지는 어색함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달라진 결에 대해 ‘좋고 싫음’을 표현할 시간도 없다.

앞서 말한 인쇄기가 등장했을 때는 물론 우마차를 대신해 운송수단으로 기차와 자동차가 개발됐을 때 반대의 목소리는 찬성보다 몇 배 컸다고 한다. 또한 사람을 대신해서 계산을 해주는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인간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라디오 기술이 발명됐을 때, 이 기술에 대한 수요는 영에 가깝다고 예측했다고 한다.

어떤 사회든 변화의 진폭이 어느 정도 가시화돼야 해당 기술과 제도에 대해 되짚어보는 여유가 생기는 듯싶다. 그러니 어찌하랴.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의 분발을 주문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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