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청년 일자리 활성화 정책에 힘입은 은행권의 대대적인 신규 인력 채용에도 찬바람이 부는 곳이 있다. 바로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한 금융권 고졸 취업 시장이다.

은행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취업을 선망하는 대표적 금융 기업으로 꼽힌다.

과거 은행들은 고졸 인력에게 취업의 문을 널찍하게 개방했고, 상업에 관한 지식과 기술의 전문 교육을 주로 하는 특성화고를 졸업한 후 은행으로 취업하는 코스가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은행원을 목표로 특성화고 진학을 택하는 이들이 많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핀테크(IT+금융) 활성화로 전반적인 행원 수요가 감소한 탓도 있지만, 일자리 확대 정책으로 은행권 전반의 채용 규모가 확대되는 추세 속 유독 고졸 채용에 인색하다는 점은 정부 입맛따라 달라지는 사회형평적 인력 채용 정책 영향이 크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KEB하나·NH농협·우리·IBK기업·SC제일·씨티 등 국내 8대 은행의 고졸 채용 인원은 지난 2014년 950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래 2015년 389명, 2016년 233명, 2017년 217명으로 하향 곡선을 지속하고 있다.

고졸 채용을 청년실업 해소의 핵심 정책으로 삼은 이명박 정부(2008~2013년)와 고졸 대신 경력단절여성으로 채용 노선을 바꾼 박근혜 정부(2014~2016년), 기회균등 차원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문재인 정부(2017년~)와 흐름을 같이 한다.

블라인드 채용방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지난해와 올해 은행권 신규 고졸 인력은 전년보다 그 수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대다수 은행이 블라인드 방식 취지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며 고졸 특별전형마저 없앴기 때문이다.

여신 업무 처리에 제한을 둔 특성화고 특별전형이 일부 은행에 살아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소규모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고졸 채용 인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시중은행들은 노코멘트로 일관했고,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ALIO)’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지난 2016년 이후 고졸 인력을 단 한 명도 선발하지 않았다.

올해는 우리은행만이 예년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특성화고 출신 지원자 등용을 예고했다.

특별전형이 없어지면서 일반전형에 학력, 연령, 자격 등의 제한도 사라졌으나 문제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취준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굳건하다는 점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연령이 낮은 고졸 지원자는 사회경험을 서술해야 하는 서류전형에서 대부분 유추돼 걸러지고 운 좋게 면접에 올라 온다 해도 앳된 얼굴로 구분된다”며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선 이들을 일단 도외시하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은행들이 특성화고 학생들의 직무 교육을 위해 은행업무 전산실습 프로그램을 개발해 배포하고 취업아카데미 등을 실시하는 것에 역설되는 태도다.

등용문을 활짝 열어둘 것만 같은 희망 고문에 애꿎은 고졸 취업 예정자들만 마음 졸이고 있다. 몇 해 전 ‘고졸채용을 늘리겠다’는 은행권 선언은 정권 교체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라는 취지는 좋지만, 고졸 취준생에게만은 냉정한 ‘블라인드’가 사회형평적 인력 채용 단절에 대한 은행의 허울 좋은 핑계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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