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이하 코드)’ 참여를 선언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지침으로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기업의 이익, 투명한 경영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 후 지난 3월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져 연임을 저지했다. 이는 주주권 행사를 통한 대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박탈한 첫 사례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해 시행 중인 미국, 영국, 일본, 네덜란드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코드 확산과 정착의 핵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참여를 분석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코드참여의 의의와 효과, 코드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검토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본다.

◆ 주주활동 총괄기구 독립시켜 높은 책임 부여

국민연금의 코드 참여는 사회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코드참여로 인한 기대효과도 크다. 코드 참여 과정에서 가장 뜨거웠던 쟁점은 연금사회주의 논란과 국민연금의 주주활동 범위였다.

남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자, 수탁자로서 책임이행을 위한 주주활동은 기본적으로 기금의 이익을 지향해야 하지만 정부의 이익이나 정책의 필요에 의해 부당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 또한 크다.

이러한 관치 논란은 의결권 행사의 핵심부서인 기금운용본부와 그 산하인 투자위원회의 낮은 신뢰도에서 비롯된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공단 산하의 기금운용 전담조직으로 공단 이사장은 복지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하고 본부장(기금이사)은 추천위원회 추천과 복지부 승인 하에 공단 이사장이 선임한다.

실무와 관련 있는 투자위원회는 그 위에 있는 본부나 공단의 기관장 임면이 정부의 손에 달려 있으며 인사뿐만 아니라 예산, 감독 등에서도 공단은 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이 정부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민연금이 코드에 참여한 후 취한 일련의 조치들을 살펴보면 현재의 관치나 연금사회주의 우려가 과도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송민경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코드 참여와 주주활동 확대를 위한 개선의 핵심은 주주활동 수행과 관련된 지배구조의 개선에 앞서 주주활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감시할 내부기구의 변경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신설하고, 해당 기구에 주주활동과 관련된 핵심적이고 총괄적인 역할을 부여한 방안은 연금사회주의 및 관치우려를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탁자책임 전문위는 재계, 노동계, 지역 등 가입자 단체가 추천하는 외부의 민간 전문가로 구성되며 이들 위원 간에 일정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수탁자책임 전문위의 전신인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의 경우 구성원수(9인)가 적었지만 투자위원회의 요청으로 일년에 몇건 정도의 예민한 안건에 찬성 및 반대하는 경우 관치 등 소모적인 논란이 발생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는 가입자 단체 등의 추천으로 전문위원회 위원을 대표성 있게 구성하는 방식이 전문위에 대한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를 줄이고 독립성에 관한 우려를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연금은 전문위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세부 방안도 함께 공개했다.

전문위원회 위원에게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 공정한 직무 수행, 이해관계 직무의 회피 등에 관한 내용이 담긴 서약서와 이해상충 여부 확인서를 제출하게 하고 전문위원회 회의에서 각 위원이 발언한 내용 전부를 회의록으로 기록해 보관하는 등의 조치다.

이 중 녹취록 수준으로 정리, 보관되는 회의록은 국회 상임위 요구가 있는 경우 요약된 형태로 비공개 제출된다. 이들 방안은 소송을 통한 책임 추궁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여 전문위 위원의 구체적인 발언이나 행위가 기금의 이익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데 상당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서신교환으로 시작해 대표소송 제기까지 강행

국민연금이 코드 참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된 또 다른 사안은 ‘주주활동 범위’다. 특히 관심을 끈 쟁점은 주주제안이나 위임장 경쟁과 같이 자본시장법 상 5%룰에 따라 높은 수준의 공시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주주활동이다.

일반적으로 (사외)이사 및 감사 후보를 추천하거나 정관 변경을 요구하는 주주제안과 주주가 제안한 안건의 통과를 위해 다른 주주에게 위임장을 모으는 위임장 경쟁은 경영활동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때문에 이들 활동을 국민연금이 수행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시민단체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주활동의 효과를 높일 수 있게 주주제안이나 위임장 경쟁 등 경영참여 행위를 주주활동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경영계에서는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 우려가 큰 만큼 주주활동을 가능한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결국 국민연금은 공시 부담 등을 감안해 주주제안 등의 활동은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최고의결기관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만 주주활동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찬반 양측의 주장을 적절히 수용한 모양새다.

국민연금이 의지를 표명한 주주활동에는 실제 효과를 발휘해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할만한 여러 활동이 포함돼 있다.

우선 국민연금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등 다양한 비재무 요소에 대해 서신교환이나 이사회의 대화 같은 비공개 대화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들 활동은 해외 연기금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가장 대표적인 주주활동이다.

중점관리사안에는 배당, 임원 보수, 횡령, 배임이나 사익편취 등 위법행위와 관련된 사항들이 포함됐다. 이 같은 위법행위는 기업 경영진 입장에서는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이들 쟁점에 관해 기업과 집중적으로 대화를 시도할 여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더 나아가 국민연금은 비공개 대화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대상기업 명단을 공개하고 필요에 따라 공개서신을 보낼 계획도 밝혔다.

많은 기업에서 1~3대 주주의 지위에 있는 국민연금이 문제가 있는 기업 명단을 공개하고 해결 방안 제시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게 되면 해당 기업의 이사회나 경영진은 부담을 느낄수밖에 없다. 이는 경영이나 지배구조 등을 기업 스스로 개선하게 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결권 행사 내역을 주주총회 전에 공개하거나중점관리사안과 관련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경우에는 책임이 있는 임원의 재선임 안건도 반대할 수 있다.

◆ 주주소송 적극 나서며 기업의 위법행위 제한

국민연금은 코드에 참여하며 필요하다면 ‘주주소송’까지 제기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이는 국내에 주주소송을 도입해 시행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만약 대규모 기업집단 지배주주 일가의 계속되는 갑질이나 비상식적인 경영권 분쟁, 중대한 위법행위로 인해 보유 주식의 가치가 폭락하고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례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국민연금이 시도할 만한 주주활동을 예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표 참조>.

주주소송은 위법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를 회복하고 잘못을 저지른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핵심 장치다. 대표적인 주주소송은 ‘대표소송’과 ‘증권집단소송’이 있다. 대표소송은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으로 승소할 경우 배상금은 회사로 귀속된다. 주주는 회사가 손해를 배상받아 주가가 상승하면 간접적인 이득을 얻는다. 반면 증권집단소송은 원고인 주주가 승소하면 이사에게서 직접 손실을 배상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대표소송과 증권집단소송을 도입하면서 기업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했지만 기 만큼 성과가 크지는 않았다. 소송 제기 건수 자체가 너무 저조했기 때문이다. 연평균 제기 건수를 살펴보면 대표소송은 약 6.5건, 증권집단소송은 1건 미만에 불과하다.

이 같은 결과는 소송을 제기할 주체가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표소송을 제기할 뜻이 있는 개인주주는 아무리 많이 모인다 해도 상법이 정한 대표소송 원고의 자격 요건인 지분 0.01% 이상을 보유하기 어렵고, 기관투자자의 경우 대규모 투자자로 원고 자격은 갖추었지만 정작 대표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계열 증권사의 영업을 생각한다면 소송을 제기할 만한 사정이 있어도 잠자코 있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민연금이 주주소송에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면 기업의 경영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연금은 주식을 보유한 대부분의 국내 상장사에 대해 원고 자격이 있으며 동시에 사업관계나 소유지배구조로 인한 이해상충은 거의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소송 참여는 보다 수월해질 것이며 대표소송이나 증권집단소송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이사가 횡령, 배임 등으로 기업에 막대한 규모의 손실을 끼치고 형사처벌까지 받았는데도 대표소송 등이 제기되지 않는 경우는 줄어들 것이다.

송 연구위원은 “이사의 위법행위와 회사의 대규모 손실이 법원 선고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 국민연금이 주주소송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위법행위 억제 및 손실 구제 면에서 훨씬 실효성 있는 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며 “코드참여와 함께 다양한 주주활동을 수행하게 되면 잘못된 기업경영에 책임을 묻고 중장기 기금가치를 보호하는 등 현실적인 개선을 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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