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5 18:30 (일)
[응답하라, 우리술114] 조정형 명인, 원형 잃은 전통주 복원 실마리 찾아
[응답하라, 우리술114] 조정형 명인, 원형 잃은 전통주 복원 실마리 찾아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4.29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석식 소주 공장장 25년, 전국 뒤지며 200여 주방문 수집
고향 전주 술 빚기 위해 사표내고 1990년 전주이강주 설립
이강주는 배와 생강 울금 침출물을 같이 넣어 증류주의 풍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 술이다. 사진은 조정형 명인이 전통방식으로 항아리에서 숙성시키는 모습 (제공 : 전주이강주)
이강주는 배와 생강 울금 침출물을 같이 넣어 증류주의 풍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 술이다. 사진은 조정형 명인이 전통방식으로 항아리에서 숙성시키는 모습 (제공 : 전주이강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을 찾아 길을 나서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겠지만, 그냥 취하기 위해서 나서는 것은 술을 알코올로만 인식하는 경우다. 물론 조직, 모임의 단합을 위해, 아니면 이야기를 매개하는 수단으로 술을 찾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나 인생의 술을 찾아나서는 경우는 그나마 술을 문화의 단계로 인식하는 초입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술은 집단의 기억이 응축된 문화다. 마치 집단 무의식처럼 우리 민족 안에 자리했던 제도였으며 질서였다. 하지만 그 문화의 원형을 우리는 오래전에 상실했다. 일제가 한반도 통치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포했던 주세령과 주세법은 우리의 전통주 문화를 말살시켰고, 해방 이후에는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원형이 일그러진 술을 마셔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근 100년 동안 전통주가 무엇인지, 술 문화가 어떠한지 모른 채, 공장에서 값싸게 만들어진 술을 마시며 일상의 피곤과 시름을 잊으려했다. 그 결과 우리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술에 담긴 집단의 기억을 잃고 만다.

그렇게 원형을 상실한 전통주를 복원할 수 있도록 실마리를 찾아준 사람이 있다. 전주에서 이강주를 빚고 있는 조정형 명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배와 생강을 이용해 빚는 이강주는 최남선에 의해 조선 3대 명주로 일컬어질 만큼 유명했던 술이다. 이 술에 대한 제법과 이강주의 다양한 술 이야기는 지난 해 취재(본지 2018년 6월 3일 참조)에서 들었던 만큼 봄볕 따스하게 내리쬐는 지난 주말 찾은 전주이강주에선 조 명인의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소주회사의 공장장으로 술 이력을 키워온 자신이 왜 전통주를 빚게 됐는지에 대한 추억을 펼쳐보였다.

1964년 대학을 졸업한 뒤 줄곧 희석식 소주 업계에서 술을 빚어왔던 조 명인은 1990년 전주이강주를 설립하기 전까지 대략 25년을 주류업계의 공장장으로 근무한다. 즉 희석식 소주와 관련,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역사책일 수 있는 그는 새로운 술의 열망을 채우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전통주를 만난 셈이다. 

1970년대 초까지 시장점유률 60%를 기록할 정도로 유명했던 삼학소주에서 소주와 인연을 맺었던 그는 1973년 부도가 난 뒤 보배소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희석식 소주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전국의 도서관을 뒤져 전통주 관련 자료를 모으는 한편, 당시 밀주라고 불리던 술을 빚는 곳이 있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제법을 확인하고 자료화한다.

이렇게 그는 잊혀져가던 우리 전통주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물론 80년대초 이런 관심은 체제에 대한 강한 저항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길을 나설 수록 그가 만난 전통주는 외려 그를 더 강하게 전통주 쪽으로 끌어당겼다고 한다. 조 명인이 직접 시범양조를 해야 할 만큼 자료가 모아지자, 때마침 제주도의 한일소주에서 그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으로 영입제안을 해 온다. 오전에는 소주를 증류하고 오후에는 전통주 연구에 매진해도 좋다는 것이다.

결국 제주도에서 그는 200여종의 전통주를 직접 양조하면서 우리 술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91년 출간된 <다시 찾아야 할 우리술>이다.

그리고 이내 기회가 찾아왔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인에게 내놓을 전통주가 없다는 점에 당황한 정부가 급하게 전통주 전문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세무 공무원의 밀주 단속이 무서워 집안 깊숙이 숨겨야했던 전통주가 드디어 빛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전통주와의 인연은 결국 1990년 전주이강주 설립으로 꽃을 피운다. 전주가 고향이었던 조 명인으로서는 전주를 대표할 수 있는 술을 생각하게 됐고, 집안에서 빚던 술 중 하나인 이강주를 명주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이후 조 명인은 지역 특산품인 오디를 이용한 와인과 증류주까지 라인업을 늘려갔으며,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분말술까지 다채로운 술을 개발하게 된다.

전주이강주 조정형 명인는 명주는 많지만 아직 세계에 내놓을 만한 명주는 등장하지 않았다며, 우리 전통주의 새로운 지평은 숙성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전주이강주 조정형 명인는 명주는 많지만 아직 세계에 내놓을 만한 명주는 등장하지 않았다며, 우리 전통주의 새로운 지평은 숙성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최근 조 명인은 명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단다. 술의 생명은 숙성인데, 꼭 오래 묵힌다고 다 좋은 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과숙되면 고유한 향과 맛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세계적인 명주로 이강주를 성장시키기 위해선 더 많은 실험과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 등을 통해 최상의 숙성기간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알코올 도수에 따라 각각 다른 숙성 사이클을 갖고 있는 만큼 배와 생강, 울금 성분에 대한 투입비율도 달리하고 있다고 한다. 조 명인의 시도가 계속될수록 우리 술은 또 다른 경지에 이를 것이다.

특별한 술을 생각하며 길을 나섰던 조 명인의 수불(술의 옛 이름)기행은 이처럼 옛 기억을 추억해내고 고을마다 깃들어 있는 공동체 문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명주를 만들기 위한 그만의 독특한 길나섬이 되고 있는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