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2 07:50 (수)
[수불시네마기행11] 화양연화 같은 젊음, 그래도 ‘봄날은 간다’
[수불시네마기행11] 화양연화 같은 젊음, 그래도 ‘봄날은 간다’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5.07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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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하는 청춘의 사랑은 통과의례, 그 아픔 달래준 소주
라면 같은 사랑과 김치 같은 사랑 중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사진=다음 영화)
(사진=다음 영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봄은 청춘을 상징한다. 그 청춘들의 봄은 그래서 사랑으로 가득하다. 시인 서정주는 ‘다시 밝은 날에 - 춘향의 말2’라는 시에서 ‘미친 회오리바람’과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라고 노래했듯 사랑은 그렇게 전율과 환희로 다가오지만,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의 종말은 쓰디쓴 고통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까닭에 이 환희와 고통의 드라마는 문학과 예술작품의 영원한 소재일 것이다.

벚꽃 흐드러진 날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을 확인하며 이별을 고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그 덕에 가장 아름다운 이별장면으로 남은 영화 한 편이 있다. 2001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20대 청춘들이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사랑의 통과의례를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이다.

요즘처럼 만산에 봄꽃이 지천인 계절이 되면 유지태와 이영애가 그들의 화양연화 같았던 시절의 모습을 담은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가 떠오르고, ‘연분홍 치마’ 운운하는 가수 백설희의 노래나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가 라디오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와 강릉방송국의 DJ를 겸한 PD 은주(이영애 분), 두 사람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소리를 모으러 나선다. 소리를 전문으로 채집하는 상우와 소리를 전문적으로 소비하는 은주의 조합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실행하는 방법까지 완벽하게 다르다. 이혼의 아픔을 경험했던 은주에게 사랑은 인스턴트 라면처럼 가벼워야 부담이 없었고, 그래야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우는 시간 속에서 숙성되는 김치 같은 사랑을 원한다. 음식으로서 라면과 김치는 잘 어울리는 궁합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완전히 다른 조합이다보니 두 사람의 사랑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간극만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명해진 대사 몇 마디가 있다. 소리 채집을 마치고 서울을 향하는 상우에게 은수가 건넨 “라면 먹을래요”와 “자고 갈래요”, 이 두 대사가 모아져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신조어가 태어났고, 헤어지자는 은수에게 상우가 건넨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는 당대 젊은이들에게 강한 메타포로 남겨졌다.

그리고 맞이한 두 사람의 시련, 시인 최승자의 시구처럼 ‘벼락처럼 다가와서 정전처럼 끊어지’듯 사라진 사랑의 감정은 상우에게 성장통을 가져다준다. 멀어져 가는 은주를 잡을 수 없어 안타까워하며 실연의 아픔을 겪는 상우에게 아버지가 건넨 소주. 상우는 혼자 먹던 컵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고통을 완화시켰으리라.

물론 이 소주로 실연의 아픔을 달랬다면, 우리가 굳이 사랑을 통과의례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치유될 상처였다면 다시 강릉을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소주가 고통을 완화시켜주기 보다 강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실연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상우에게 택시를 운전하는 친구가 소주를 마시자 하지만, 상우는 단번에 거부한다. 은수가 “자신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주와 라면은 조합은 상우가 처음 라면을 먹는 날,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건넨 농담 같은 말 속에서 먼저 등장한다. “라면에 소주 같이 마시면 맛있는데.” 그 시절 가난한 청춘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술과 안주의 조합 정도이었으리라. 질풍노도처럼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시절, 오직 자신만 아파했던 청춘들에게 이 조합은 주머니 가벼운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면서 감정의 완화제, 혹은 강화제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이 조합도 세월 따라 그 강도는 달랐을 터지만 그 효과는 같았을 것이다. 70, 80년대에 청춘의 시절을 보낸 이들의 기억 속의 소주는 알코올 도수 25도이며, 허진호 감독의 출세작이자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제대로 영화 한편에 옮겼던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개봉됐던 1998년 청춘의 대열에 들어온 이들에게 소주는 23도였다. 그리고 이 영화가 개봉됐던 시절, 즉 영화 속 상우와 녹음실 동료들의 회식 자리에서 마셨던 소주는 그보다 1도 낮아진 22도다.

이처럼 2000년을 전후해 소주는 빠르게 알코올 도수를 낮췄고,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우리가 식당에서 찾는 소주는 알코올 도수 17도 이하까지 등장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절의 추억이라도 ‘크’ 소리 내며 들어켰던 소주에 담긴 사연과 요즘처럼 다소 밋밋한 소주에 담긴 사연은 사뭇 다를 것이다. 하지만 만국의 청년들에게 실연의 아픔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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