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만 오가며 추억 속에 스며있는 엄마의 음식 확인
두 딸 태어날 때 묻은 ‘소흥주’ 통해 아버지의 속사랑 느껴

‘엄마의 레시피’ 포스터
‘엄마의 레시피’ 포스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음식은 추억으로 맛을 기록한다. 개인과 집단의 기억에 스며있는 음식의 맛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음식으로 전달되지만 실제는 각자의 추억에 담긴 무형의 문화로 남게 되는 까닭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홍차와 곁들인 마들렌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프루스트의 지적처럼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에,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음식은 더 그렇다.

영국의 유명 요리사이자 음식컬럼니스트인 나이젤 슬레이터의 소설 <토스트>에는 다음의 문장이 나온다. “누군가를 안아주는 일에는 냄새가 없다. 누군가를 어루만져 주는 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게 있다면, 따뜻한 브레드 앤 버터 푸딩의 냄새와 소리와 같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음식만이 갖는 특징일거다. 그래서일까,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는 끊이지 않는다. 신문왕이라 일컬어지는 노스클리프 경은 이런 현상을 미리 예상했던 듯, 대중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주제 중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음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국제음식영화제의 초청작, 영화 ‘엄마의 레시피’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음식을 나누는 최소의 단위인 가족에 깃든 맛의 기억은 공동체의 문화적 코드를 확인시키고 공유하게 한다. 음식을 나누는 것 자체가 가족애를 확인하고 확산시키는 과정임을 영화 ‘음식남녀’만큼 명쾌하게 보여준다.

영화 ‘엄마의 레시피’는 음식에 담긴 가족사를 씨줄로 삼고 대만의 현대사를 날줄로 엮어 만든 영화다.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 정부는 본토를 포기하고 대만에 상륙한다.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채 몇  년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륙의 거대 정치집단이 점령군처럼 대만을 들어오면서 대만인들은 본원적인 아픔을 치유할 틈도 없이 그들과 갈등을 벌이게 된다.

영화 속에서 이 갈등은 전면에 배치되지 않는다. 대만의 현대사와 정치적 상황은 영화의 배경처럼 흐를 뿐이다. 사업을 위해 자주 일본을 찾는 대만인 아버지(오붕붕 분)가 숙박을 하는 호텔의 프론트 직원(카와이 미치코 분)을 만나 대만에서 신혼살림을 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물론 영화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옛집을 재건축하기 위해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출발하지만 말이다.

이 과정에서 엄마가 대만으로 건너가 각종 중국요리를 배워가며 대만인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던 모습을 두 딸(후지모토 이즈미, 키나미 하루카 분)은 자신들이 맛있게 먹었던 음식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들이 잊고 있었거나 몰랐던 가족애를 확인하게 되고, 결국 음식과 그 음식의 레시피가 적힌 엄마의 공책을 들고 나선 길에서 대만을 찾게 된다.

철없던 시절에 죽은 아버지의 친척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엄마의 음식을 되찾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버지의 추억까지 덤으로 확인하게 되는 주인공 큰 딸. 그곳에서 자신과 동생이 태어나던 해 아버지가 집 정원 한편에 묻어둔 소흥주를 만나게 되고 그 술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소흥주는 바이주(백주)로 유명한 중국의 대표적인 쌀 발효주이다. 절강성과 복건성 등 양쯔강 유역에서 주로 마시는 술로 가장 유명한 술의 산지가 소흥(사오싱)이다. 중국의 소설가 루쉰의 소설 <공을기>에선 함형주점에서 마시는 대표 술로 위화의 소설 <허삼관매혈기>에선 매혈 후에 피를 보충하기 위해 마시는 황주로 등장하는 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엄마의 레시피’ 속 소흥주는 어떤 의미였을까. 중국의 오랜 전통 중에 딸이 태어나면 좋은 소흥주를 묻어 장성해 시집을 가는 날 그 술을 이바지 음식으로 보내거나 잔치에 냈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여아홍(女兒紅)’이다. 일찍 죽은 아버지의 속마음을 그 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흥주는 원홍주, 가반주, 선양주, 향설주 등 크게 네종류가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소흥주가 ‘원홍주’로 우리 막걸리 중 100일 정도 발효숙성시키는 삼양주와 제조법이 비슷하다. ‘가반주’는 누룩을 더 넣어 최소 3년 정도 숙성시키는 술로 일본인들도 즐겨 찾는 술이라고 한다. ‘선양주’와 ‘향설주’는 알코올 도수를 더 높이기 위해 술 빚는 과정에서 물 대신 원홍주 혹은 막소주를 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우리의 과하주와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흥주는 매실이나 레몬을 넣어 차게 마시는 술인데, 따뜻하게 덥혀 마시기도 한다. 소설 <삼국지>에서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도 전에’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와 마신 술이 바로 이 술이라고 보면 된다. 요즘 같은 계절엔 절인 매실과 레몬을 넣어 차갑게 마시는 술이 제격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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