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A병원은 브로커에게 소개받은 보험 가입자들이 내원하면 “입원하지 않고도 보험금을 받게 해주겠다”고 꼬드긴 뒤 진료기록부, 약제비, 입원비 등을 허위 청구하다 경찰에 구속됐다. 병원장, 브로커, 환자 등 보험사기에 관여된 일당만 135명에 달한다. 브로커들은 보험사기에 가담한 환자를 소개해주는 대가로 치료비의 30%를 받았다. 브로커는 전·현직 보험설계사와 의료인 7명이 포함됐고, 환자는 주부와 무직자가 대부분이었다.

# 허리에 통증을 느껴 강남의 한 정형외과를 찾은 B씨는 검진 결과 디스크 초기 판정을 받았고, 병원의 ‘코디네이터(상담 실장)’에게 향후 치료방식에 대한 이야길 들었다. 코디네이터는 실손보험 가입여부 및 가입 시기 등을 묻더니 도수치료 외에도 디스크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교정용 깔창이 있다며, 도수치료 10회를 끊으면 모두 보험 처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실손의료보험을 이용해 병원과 브로커, 환자까지 포함한 조직형 보험사기가 기승이다. 병원은 진료비를 과잉 청구하고, 브로커들은 환자를 소개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과잉 진료를 일삼더라도 보험으로 대부분의 진료비를 해결할 수 있어 이해관계가 성립한 거다.

병원이 실손보험 가입여부, 가입 시기를 따져본 뒤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치료나 물품까지 끼워 파는 ‘패키지형’ 보험사기는 더 문제다. 과잉 진료는 병원에서 발생하지만 결국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주체는 환자다. 의료지식이나 보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손보험 가입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 보험사기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병원의 허위(과다) 입원, 진단 등으로 인한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해마다 치솟고 있다. 결국 보험사기를 근절로 보험금 누수를 잡지 않는 한 선량한 가입자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실손보험료 인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보험업계 중론이다.

장기보험 사기적발 車보험 상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역대 최고수준인 798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680억원(9.3%), 4년 전인 2014년과 비교하면 무려 1985억원(33.1%)이나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에서 주목할 점은 장기손해보험의 보험사기 적발금액이 처음으로 자동차보험을 앞질렀다는 것이다. 

장기손해보험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3561억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515억원(16.9%) 증가했다. 전체 보험사기 금액에서 장기손해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37.1%에서 지난해 44.6%로 3년 만에 7.5%포인트나 늘어났다.

특히 병원에서 이뤄지는 각종 보험사기가 증가세다. 최근 3년간 허위 입원·진단·장해·수술 등 병원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보험사기의 적발금액은 2016년 1417억원, 2017년 1764억원, 2018년 1777억원 등 매해 늘고 있다.

이 같은 병원의 ‘허위 청구 4종’으로 발생한 보험사기 적발금액 비중은 꾸준히 20%를 웃돌고 있다. 매년 보험사기 10건 중 2건은 병원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그만큼 보험사들은 진료기록을 조작하고, 허위 영수증을 발급하는 등 병원의 허위 진료비 청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장기손해보험 보험사기 적발금액의 대부분은 실손보험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실손보험을 수익사업화 해서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하는 급여 이외의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비용을 보상한다. 여기서 비급여란 건강보험수가가 정해지지 않은 진료 항목으로 병원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수가가 정해진 급여진료보다 병원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다. 

‘공짜 시술’을 미끼로 발생하는 보험사기의 대부분이 비급여에서 발생하는 이유다. 급여는 수가가 정해져 있는데다 진료에 대한 심평원의 심사도 엄격하다.

의료관련 보험사기는 특성상 보험을 잘 알고 있는 설계사 등의 공모가 뒤따른다는 점도 문제다. 병원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문제 설계사의 경우 모집실적을 올리기 위해 보험에 가입시키고, 가입자가 보험금을 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병원을 알선하는 식으로 이익을 챙긴다.

본인도 모르게 보험사기 연루

병원과 브로커가 엮인 복잡하고, 전문적인 보험사기만 문제는 아니다. 보험가입자도 모르게 보험사기에 관여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일례로 병원에서 디스크환자에게 도수치료를 10회 이상 끊으면 디스크 치료 보조용 깔창을 지급하겠다고 하는 식이다. 도수치료는 실손보험에서 보장하는 진료지만 보조 치료용구는 그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병원은 깔창 값까지 포함한 도수치료 진료비 영수증을 끊어주고, 보험계약자는 이를 보험사에 청구한다. <표 참조>

이 경우 보험가입자는 추후 병원과 보험사기에 공조했다는 의심을 사거나 함께 연루될 수 있다. 약관상 보상하지 않는 손해임을 알고도 보험금을 청구했다고 볼 수 있어서다. 약관상 보상하지 않는 손해임을 알고도 보험금을 청구했다고 볼 수 있어서다. 불필요한 과다 입원이나 치료 등도 처벌 가능성이 있기에 실손보험 청구 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험사기 조사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게 보험금 청구가 늘고 있는 사례는 백내장 수술을 활용한 시력교정이다. 단일 수술로는 보험사에 청구하는 금액이 워낙 크고, 청구 방식도 다양해 보험사들은 보험사기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해져 흐릿하게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혼탁해지는 정도에 따라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이 되지만 사실상 진단 기준이 모호하다. 환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백내장 수술은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눈 안에 인공 수정체(렌즈)를 삽입한다. 문제는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해 백내장 수술을 노안 수술이나 시력교정 수술로 활용하는 경우다. 

이러한 논란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6년 표준약관 개정으로 백내장 수술 시 다초점렌즈를 실손보험 보장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그러자 일부 안과병원은 백내장 사전 검사비에 렌즈 값을 녹이는 방식으로 진료비를 받고 있다는 것이 보험사들의 전언이다. 과잉 의료행위를 막기 위해 제도에 직접 메스를 대자, 또 다른 수법의 과잉 의료행위가 탄생한 것이다.

특히 노안이나 시력교정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필요성을 느낀다. 이 또한 주변 지인이나 병원의 권유를 통해 보험사기 유혹에 빠지기 쉽다. 과잉 진료를 일삼는 문제 병원은 보험사기 연루 가능성도 높다. 만약 환자가 정상 진료를 받았다고 잘못 알고 있더라도 실손보험금 청구를 했다면 덩달아 병원과 함께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보험사기 잡아야 가입자 보호

실손보험 등 장기손해보험의 보험사기 적발은 자동차보험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보험업계는 장기손해보험의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집계되는 수치의 10배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시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용, 보험사기를 감추기 위한 수법도 점차 다양화하는 모습이다.

자동차보험의 보험사기 적발이 장기손해보험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이유는 사고 시 바로 보험사에서 현장출동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병실에 허위 입원하는 경우라면 추후 보상직원이 불시 검사에도 나설 수 있다. 사고와 보상이 한 번에 이뤄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병원 등에서 이뤄지는 보험사기는 보험사에겐 사후에 발생한다. 3년 이내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상받을 수 있어, 보험사기를 마음먹고 치료를 받은 지 1~2년 후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수사 등의 대응이 어렵다.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보험사기 즉시 대응으로 대다수의 실손보험 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환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진료비 영수증이나 진료기록 등을 병원에 요구, 전산을 통해 보험사로 바로 제출하는 프로세스다. 현재는 국회에 관련 법안이 계류된 상태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보험금 청구가 즉시 가능해지면 보험사는 보험사기와 관련된 이상 징후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금 지급이 크게 늘어나 부담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귀찮아서 포기했던 소액 보험금 청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보험금 청구 절차가 복잡했기 때문이었을 뿐 원래 지급돼야 했던 보험금이란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이다. 보험사기 때문에 거액의 보험금 누수가 발생하기보다 정말 실손보험이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보험의 취지에도 알맞다는 것이다.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가 심해질수록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과잉 진료를 받는 일부 가입자 때문에 대다수 선량한 가입자들이 비싼 보험료를 감당해야 한다.

한 보험사기조사(SIU) 관계자는 “사무장병원 등 문제 병원이나 특정 수술에서 과도하게 보험금 청구가 들어온다면 테마를 잡고 수사에 나선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보험금 누수를 막아야 선량한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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