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2 09:15 (월)
[응답하라, 우리술120] 효모·설탕 일체 넣지 않고 양조하는 ‘작은 알자스’
[응답하라, 우리술120] 효모·설탕 일체 넣지 않고 양조하는 ‘작은 알자스’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7.01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인 도미니크와 신이헌 작가, 충주서 건강한 술 만들어
고된 노동·인내심으로 키운 사과, 발효시킨 ‘시드르’ 맛 일품
프랑스식 사과발효주인 시드르를 일체의 효모와 설탕을 넣지 않고 사과에 있는 천연효모만으로 건강하게 술을 빚고 있는 도미니크 에어케씨와 신이헌 작가. 사진은 병입한 시드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부부 (사진=작은 알자스)
프랑스식 사과발효주인 시드르를 일체의 효모와 설탕을 넣지 않고 사과에 있는 천연효모만으로 건강하게 술을 빚고 있는 도미니크 에어케씨와 신이헌 작가. 사진은 병입한 시드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부부 (사진=작은 알자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쌀과 보리, 밀 등으로 술을 빚을 때는 물과 누룩(또는 효모) 등이 필요하지만 인류가 처음 운 좋게 발견한 과일 발효주는 과일만 있으면 술을 만들 수 있다.

다 익은 과일은 알코올을 만들기에 충분한 당분을 가지고 있고, 또 과일의 겉껍질에는 그 당분을 알코올로 분해하는 천연효모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인은 수확한 포도를 으깨 발효통에 넣으면 됐고, 사과 발효주도 착즙해서 발효조건만 맞춰주면 과육에 붙어 있던 천연 효모들이 알아서 과즙 속의 포도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발효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자연에서 술을 발견한 뒤 그 놀라운 맛에 흠뻑 빠져 스스로 양조인의 길을 나섰던 초기 인류와 달리, 상업양조의 길을 나선 현대인들은 실패 없이 더 많은 술을 양조하기 위해 효모를 넣었고,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설탕을 더 넣어 술을 빚기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상당수의 과일 발효주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과일 발효주의 재료는 물론 식용 과일 대부분이 다량의 화학비료와 농약의 결과물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가격을 이유로 쉽게 유기농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즉 과일발효주가 등장한 이래 가장 많은 화학약품에 노출된 재료로 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땅의 건강함과 복원력을 믿고, 인공의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바이오다이나믹(생명역동) 농법으로 키운 과일로 술을 빚는다면 어떨까. 과일농사부터 유기농을 고집하며 고된 땀과 인내심으로 키워내고, 게다가 술을 만들면서 일체의 효모와 설탕을 넣지 않아 발효과정 마저도 수없이 사람 손을 타야만 양조가 완성되는 술. 그런 술을 만드는 곳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지난 6월 중순 찾은 충주의 한낮은 여름이었다. 사과로 유명한 이곳에 지역 연고도 없이 도자기마을에 술도가를 내고 한국판 내추럴와인을 완성시키기 위해 고된 노동도 마다않고 근본주의적 농법을 유지하는 농부이자 양조자 부부가 살고 있다.

알자스에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와인을 빚는 방법을 공부한 도미니크가 자신이 빚은 시드르의 시음을 위해 술을 따르고 있다.
알자스에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와인을 빚는 방법을 공부한 도미니크가 자신이 빚은 시드르의 시음을 위해 술을 따르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알자스에서 와인 양조를 배우고 귀농을 준비하던 도미니크 에어케(애칭 레돔, 50)와 프랑스 유학 시절 친구의 집들이 파티에서 그를 만난 신이헌 작가. 이 두 사람이 둥지를 튼 ‘작은 알자스’가 그곳이다.

이곳에서 빚어지는 술은 사과로 만드는 시드르(사과 발효주, 미국에선 사이다)와 국내산 캠벨로 양조하는 로제와인 등이다. 보통의 시드르는 효모를 이용하므로 포도주처럼 3~4주면 완성되지만 이 집의 시드르는 5개월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스파클링 시드르의 경우는 다시 한 달 정도 샴페인을 만들 듯 효모와 슬러지를 병의 입구로 모아서 제거하는 섬세한 공정을 거치게 된다.

그렇게 긴 시간을 효모와 대화 나누듯 양조를 해서 얻는 생산량은 5000병 정도. 그 중 시드르는 3500병이란다. 생산량은 적지만, 맛은 보통의 술과 다르다. 그래서 술맛을 본 사람은 ‘작은 알자스’를 잊지 못한다. 산미와 감미의 어우러짐은 물론 풍부한 기포, 게다가 사과향과 함께 올라오는 다양한 과일향이 잘 어우러져 있다.

우물가에서 물 길어 나그네에게 건네는 단정하게 차려입은 처자처럼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술의 기품이 느껴지는 시드르(알코올 도수 6도)다. 맛과 향의 밸런스가 가져다는 주는 힘이 아닐까싶다.

충남에서 재배한 속 빨간 사과(품종명 러브레드)로 빚은 시드르는 알코올 도수는 화이트 시드르보다 1도 낮지만 드라이한 맛과 로제와인의 빛깔을 띠고 있어 ‘차도녀’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런 술맛을 내기 위해 ‘작은 알자스’의 도미니크는 겨우내 수십 번 통갈이를 한다고 한다. 필터로 효모를 거르면 수고는 덜지만 향미 성분까지 사라지기 때문에, 효모의 개체수가 늘어났다고 판단되면 그때마다 발효조를 바꾸면서 양조의 속도를 늦춘다고 한다. 빨리 발효된 술보다 시간과 대화하며 빚어진 술이 더 풍부한 맛을 내고 균형까지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빚어지는 술의 종류를 늘리기 위해 ‘작은 알자스’가 수안보에 자신들의 땅을 마련했다. 2000평 정도의 땅에 알자스식 양조장을 짓고 시드로용 사과와 와인용 포도를 다양하게 식재할 계획이란다.

사과나무는 시드르용으로 사과연구소와 상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고 포도는 국내산 포도인 캠벨과 MBA, 청수는 물론 리슬링, 샤르도네, 피노누아, 피노그리, 메를로 등의 외국 품종도 식재할 예정이다. 어떤 품종이 ‘작은 알자스’에 적합한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선별될 것이다.

술맛은 술도가를 찾는 발걸음을 결정한다. ‘작은 알자스’의 도미니크가 수안보에서 펼쳐낼 술이 주당들의 발걸음을 재촉할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