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타사 보험요율 베껴 쓴 보험사에 수정 권고
환급금재원 더쌓고 보험료 올려야…상품경쟁력 하락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내년부터 무해지·저해지환급형 보험상품의 보험료가 비싸질 전망이다.

무해지·저해지환급형 보험이란 일반 상품보다 저렴한 대신 보험료 납입기간 이전에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이 적거나 없는 상품을 말한다. 해지환급금만 일부 포기하면 같은 보장의 보험상품을 더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최근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다.

19일 금융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4월 생명·손해보험사에 무해지·저해지환급형 보험상품에 대한 상품감리 결과를 전달하고 지난달까지 이행계획서를 받았다.

앞서 금감원은 보험사에 무해지·저해지환급형 보험의 보험료 산출 시 자사의 경험통계 등을 바탕으로 해지율을 재산정하라 지시했다. 보험사들은 이행계획서에 따라 내년 1월 상품개정 시점까지 이를 반영해야 한다.

무해지·저해지환급형 상품은 동일한 보장의 일반형 상품보다 저렴하다. 보험료산출 요율에 가입자들의 예상 해지율을 포함해서다. 보험료 납입기간 내 해지할 사람들을 미리 예측해 그만큼 보험료를 깎아주는 방식이다.

만약 예상보다 더 많은 가입자들이 보험을 유지한다면 보험사는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보험료는 적게 받았는데, 보험금은 더 많이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이에 보험사들은 예상 해지율에 따라 보험금(환급금) 지급 재원을 쌓는다.

이번 감리에서 보험사들은 무해지·저해지환급형 상품 설계 시 합리적인 근거 없이 해지율을 산출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마다 보유계약자의 해지 성향이 다름에도 대부분 처음 저해지환급형 상품을 도입한 오렌지라이프생명(전 ING생명)의 해지율을 단순히 베껴온 거다.

당시 오렌지라이프생명이 저해지환급형 종신보험에 사용한 해지율은 4%다. 이후 대부분의 생보사들은 똑같은 해지율을 사용한 무해지·저해지환급형 상품을 줄줄이 내놨다.

보험료 납입기간별로 해지율을 달리 사용하지 않은 보험사들도 문제가 됐다. 무해지·저해지환급형 보험은 납입기간 중 환급금이 적거나 없는 상품이다. 이에 납입완료 시점에 해지가 몰려 환급금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은데, 매년 똑같은 해지율로 보험금 지급재원을 쌓아온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 한화생명, 삼성화재, KB손해보험 등 대형보험사 정도가 자사 경험통계를 활용한 경과기간별 해지율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보험료 납입기간 동안 해지환급금이 전혀 없는 무해지환급형과 일부만 지급하는 저해지환급형의 납입기간별 환급액이 다름에도 같은 해지율을 사용한 것도 지적했다. 종신보험과 건강보험 등 가입목적이 전혀 다른 상품에도 해지율을 차등화하지 않았다.

이번 상품감리 결과에 따라 보험사들은 기존보다 해지율을 보수적으로 적용할 전망이다. 금감원이 무해지·저해지환급형 상품 판매에 따른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경과기간별 단일해지율을 사용했거나 타사 요율을 베껴 쓰던 보험사의 경우 자사 경험통계를 반영하면 지금보다 해지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며 “해지율이 낮아지면 보험료는 오른다. 일반상품보다 약 20% 저렴하던 무해지·저해지환급형 상품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알뜰형, 실속형 등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특징만 부각된 무해지·저해지환급형 상품의 상품명을 보험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명칭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에 무해지환급형은 ‘해지환급금 미지급형’, 저해지환급형은 ‘해지환급금 일부 지급형’으로 각각 변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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