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주인공 윌리 노먼을 위로할 수 있는 리더십 절실
윤종규 회장 근로시간 단축, 김도진 행장 전점포 방문 실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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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세계의 변화는 하루가 다르다. 20세기의 질서를 규정했던 문법으로는 21세기를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는 시대. 매일같이 새로운 기준과 질서가 등장해 서로 충돌하며 조정되면서 다시 맞게 되는 하루는 매번 어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다. 그래서 흥미롭지만 당대를 사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

아서 밀러의 명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20세기의 문법이 지배하던 시절의 작품이다. 다수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본 뒤 자본주의의 몰락 내지는 경종을 울린 작품이라고 이데올로기적 분석을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묵직한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극이 초연된 1947년, 당시 전국 세일즈 매니저 단체에서는 이 연극으로 인해 신입사원 선발 계획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고, 상공회의소 소장은 이 작품이 세일즈맨의 진실을 왜곡시켰다며 분노를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거나 본 세일즈맨들은 한결같이 주인공 윌리 노먼을 자신과 등치시키며 감정몰입을 해왔다. 그것은 새로운 문법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아서 밀러가 바라본 자본주의의 구조와 성격은 지금이나 그 때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아서 밀러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인종과 국가를 넘어 통시대적으로 다가오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작품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 노먼은 현실과 괴리된, 그래서 허황될 수밖에 없는 꿈을 꾸며 가족 구성원들과의 삶에서 멀어져만 간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삶의 무게감으로 연결되고 윌리를 더욱 곤궁에 빠뜨린다.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가정을 영위해야 한다는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를 실천하기 위해 헌신을 다한다. 하지만 그 헌신은 자신만의 생각일 뿐. 자신이 가장 믿었던 큰 아들 비프와의 갈등으로 이어져 더 멀어져만 간다. 게다가 실적은 떨어지고, 직장마저 잃게 될 위기에 빠진 윌리. 그는 가족과 큰 아들 비프를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세일즈맨의 죽음>은 시대를 초월하며 여전히 우리에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는가. 그것은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봉급생활자들이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윌리 노먼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지속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모두가 윌리 노먼식 고민에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그 지점에서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리더들은 이 작품의 함의를 자신의 동선과 메시지에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최근 금융회사 CEO 두 사람의 메시지와 행보를 이와 관련해 조망해 본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하반기 그룹 경영진 워크숍 자리에서 “하반기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그룹 전체 ‘워크 다이어트’ 및 ‘워크 스마트’를 통해 주 52시간, 나아가 주 40시간 근무체제를 정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의 요점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행의 김도진 행장은 전국의 모든 점포를 방문하겠다는 취임일성을 꾸준히 실천해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체 670개 지점 중 약 83%에 해당하는 561개 지점을 방문해 1만613명의 직원을 격려했다고 한다. 은행 측이 밝힌 숫자만큼의 직원을 일일이 만나진 못했겠지만, 전국의 점포를 도는 일정을 소화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행장이 실천할 아젠다 가운데 중요도가 높은 것으로 분류돼 있지 않으면 아예 실천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렇게 윤 회장과 김 행장의 행보를 <세일즈맨의 죽음>과 연결시킨 것은 성공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선 이 작품 속의 윌리 노먼을 생각하며 조직을 관리하고 동선을 짜야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는 어려운 일이지만 가능한 행보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선 감수해야 하는 정책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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