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1 03:30 (수)
[응답하라, 우리술 124] 김승옥 작 ‘서울, 1964년 겨울’ 속 소주는 어떤 모습일까?
[응답하라, 우리술 124] 김승옥 작 ‘서울, 1964년 겨울’ 속 소주는 어떤 모습일까?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8.05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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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소리 절로 나는 알코올 도수 30도, 희석식과 증류소주 브랜디된 술
서울 시장은 진로 아닌 ‘삼학’이 주도했고, 전국 555개 소주술도가 산재
김승옥을 당대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준 ‘서울, 1964년 겨울’ 초판본 표지
김승옥을 당대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준 ‘서울, 1964년 겨울’ 초판본 표지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軍用)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안(安)이라는 대학원 학생과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요컨대 가난뱅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20대 김승옥을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등극시켰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의 글머리이다. 세브란스에서 신촌으로 난 좁은 도로 어느 쯤에 있었을 포장마차에서 세 사람은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요즘 세대야 본적도 없겠지만, 카바이드는 80년대까지 만해도 밤이 내린 도시의 뒷골목, 큰길과 만나는 어귀쯤에는 반드시 자리하고 있던 포장마차의 어둠을 걷어간 핵심 조명이다. 

물이 담긴 깡통에 생석회를 넣는 순간부터 가스가 올라오면서 매캐하게 풍겼던 기분 나쁜 이취는 그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그 냄새를 떠올리면 불쾌함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던 포장마차에선 세 종류의 술을 팔고 있었다. 아마도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맥주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소주와 맥주의 종류도 늘어난 데다 청하 같은 일본식 청주 비슷한 술까지 있으니 포장마차에서 파는 술도 다채로워진 셈이다.

그렇다면 당시 팔던 소주는 어떤 모습과 내용을 하고 있었을까? 답은 오늘날처럼 100% 희석식 소주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한 양곡관리법 개정은 1965년에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쌀로 소주를 빚는 것은 언감생심, 고구마 등을 증류한 소주가 상당수였고, 일부에서 쌀소주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술이 서울의 밤거리를 채우고 있었을까. 당시 소주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를 혼합한 소주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증류주의 향을 유지하면서도 값 싼 주정을 넣으면 가격을 조금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4년 당시의 소주 생산체계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대규모로 소주를 생산하던 곳이 대략 10곳, 그리고 소규모 소주 술도가까지 합치면 555개 정도의 양조장이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무척 많은 숫자의 술도가가 있었던 것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크래프트’에 해당되는 술도가들이 제법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 뒤 1도1주 정책을 폈으니 오랜 기간을 두고 소주업체들은 구조조정 됐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김승옥의 소설 속 포장마차에 집중해보자. 그가 혜성처럼 문단에 등장하던 시절. 서울의 주당들은 오늘날 즐기는 소주보단 좀 더 풍미를 가진 소주를 마셨다는 것. 

그리고 소주의 알코올 도수도 30도 정도로 ‘크’소리가 절로 나는 술이었다. 70~80년대에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그래도 근접한 알코올 도수(25%)를 경험했지만 17도짜리 소주로 술을 배운 젊은 층은 ‘크’ 소리를 내면 왠지 계면쩍게 느껴지는 시절이니 술맛은 상상에 맡겨본다.

그리고 당시 서울 소주 시장의 강자는 누구였을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로는 1970년이 되어서야 1위에 올랐으니 당연히 당시 리딩 소주 업체는 다른 회사였다. 당시 야당 정치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줬다는 후문으로 호되게 세무조사를 받아야 했던, 그리고 결국에는 부도가 나야만 했던 삼학. 이 소주가 당시 서울 시장을 주름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주가 서민들의 애환을 충분히 녹일 만큼 저렴하진 않았을 것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주세도 따라서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증류주를 넣어 가격이 높아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 사정 가벼운 서민들은 거의다 막걸리가 최선이었던 시절이었고, 요즘은 쓰지 않는 단어가 됐지만 1.8리터 들이 막소주가 그나마 서민들의 차지가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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