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 리더십만큼 금융권 수장의 위기관리 능력도 중요
일본에 의한 ‘반도체 왜란’ 대처, 금융권 하반기 핵심 이슈로 대두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지난달부터 시작한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등으로 한반도가 8월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달궈졌다. 연일 극일 및 반아베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의 규모와 수위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관련 대책 마련을 두고 갑론을박하며 고성만 주고받는 사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의 직접적 피해기업인 삼성과 SK의 수장들은 현장을 발로 뛰면서 위기 관련 메시지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초격차 산업의 수장들답게 자신의 기업 구성원과 시장 두 곳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적 포석일 것이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초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 직후 일본을 방문해 부품소재의 수입선 등을 확인한 뒤 최근 계열사 사장단 긴급회의에서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SK의 최태원 회장도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 조치 이후 긴급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고 “그동안 위기 때마다 하나가 돼 기회로 바꿔 온 DNA가 있으므로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다”며 국면 돌파를 위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두 기업의 수장들 모두 초유의 일을 경험하면서 자신들의 안정적인 리더십을 펼쳐 보이려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위기의 경우, 초격차 산업 분야에서의 리더십 유지는 물론 기업의 존립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메시지의 소비는 국내를 넘어서 해외 투자자와 구매자까지 확장될 것이다. 

일본에 의해 일어난 이번 ‘반도체 왜란’에 대한 대처능력은 3세대로 이어받은 두 회장에 대한 실질적 평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자신들의 리더십과 평판에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따라서 기업 측면에선 리더의 메시지 및 행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또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업 수장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쪽으로 메시지 전략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대외적으로 포장돼 소비되는 이미지다. 진짜 실력은 그 이면에서 보여줄 능력, 즉 기업 내부 구성원들이 체감하게 될 실질적인 리더십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선입견을 없애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매번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신이 어쩌면 현재의 국면에서 가장 필요한 리더의 덕목일 것이다. 특정한 주제나 강박에 주위를 뺏기지 않고 자유롭게 사물과 상황을 관찰하는 능력은 그 유연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난주 일본이 수출 금지했던 반도체 소재 중 1건의 수출을 허가했다. 35일만의 일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수출금지 조치 이후 바로 일본을 향했다.

이 수출건이 이 부회장의 방일 기간 중 미리 협의됐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상거래는 주고받을 수 있는 거래가 성사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연전에 박노해 시인은 ‘위기 앞에서’라는 시를 발표했다.

‘수문심인 修文深仁/인문을 널리 닦고/인의를 깊게 하기//함장축언 含藏蓄言/말은 안으로 품어/꽃망울로 쌓아가기//거망관리 遽忘觀理/분노를 다스려 잊고/이치를 헤아리기//지지지지 知止止止/그칠 데를 알아서/멈춰야 할 때 멈추기’

수문심인, 함장축언, 거망관리, 지지지지 등의 사자성어는 모두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책 ‘일침: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끝’에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이 한자어를 시인은 운문의 리듬을 실어 하나씩 배치하면서 ‘위기’ 앞에서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 할 일 등을 노래하고 있다. 

박 시인은 ‘분노를 다스리고 이치를 헤아려야 하며 말을 삼가고 인문을 수양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칠 때를 알아야’ 위기를 타고 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과의 무역전쟁이 얼마나 계속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반도체를 넘어서 금융권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농후하다. 하반기 금융권의 핵심 이슈는 일본에 의해 발생한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일반 국민은 분노해도 되지만, 위기를 극복해야할 주체들은 분노에서 답을 구할 수 없다. 오히려 냉철해져야할 시기다. 답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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