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백세주·산사춘’ 쇠락 이후 약주 시장 존재감 미미
‘소확행과 미식’ 추구 소비자 늘면서 가능성 열리기 시작

서울 신사동과 명동에 있는 전통주 전문주점 '백곰막걸리'에는 80여종 이상의 약주가 비치돼있다. 이 중 가장 잘 나가는 약주 5종의 사진이다. 왼쪽부터 청진주, 풍정사계춘, 제주오메기맑은술, 황진이, 석로주 순이다.
서울 신사동과 명동에 있는 전통주 전문주점 '백곰막걸리'에는 80여종 이상의 약주가 비치돼있다. 이 중 가장 잘 나가는 약주 5종의 사진이다. 왼쪽부터 청진주, 풍정사계춘, 제주오메기맑은술, 황진이, 석로주 순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주세법상 약주는 쌀누룩이 아닌 전통 방식의 발효제인 누룩을 사용해 빚는 술이다. 세법상 분류에는 존재하지만 약주는 백세주와 산사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술이 발표되기 전까지 시장에서 존재감은 미미했다.

지난 1991년 고 배상면 회장이 찹쌀과 약재로 맑은 술을 빚어 ‘백세주(국순당)’라는 이름의 술을 출시하면서 약주는 소주와 맥주, 그리고 막걸리로 삼분돼 있던 주류시장에서 확실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소주와 반반씩 섞어 마셨던 ‘오십세주’가 일반에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백세주는 새로운 술 장르를 개척했던 리더 격의 술이었고, 결국은 약주라는 새로운 시장을 국내 주류업계에 선사하게 된다. 정점을 찍었던 2003년 백세주는 단일 품목으로 1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을 정도다. 1997년에 배상면주가에서 내놓은 산사춘도 중저가 약주 시장을 견인했던 쌍두마차 중 하나였다.

이렇게 2000년대를 풍미했던 약주는 저도주를 선호하는 시장 성향과 정체성을 잇는 후속작 부재 속에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다시 미약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막걸리 시장마저 위축되면서 약주 중심의 전통주 시장은 더욱 존재감을 상실하게 된다.

그랬던 약주시장에 최근 몇 년 전부터 부활의 불씨가 일기 시작했다. 가양주 방식으로 전통주를 복원해서 상업화에 나선 술도가들이 연이으면서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감미료 막걸리 붐과 함께 시장이 조성되고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만큼 뜨거운 것은 아니다.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 전체 시장의 파이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더 나은 술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고객들이 새로운 전통주에도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그 덕에 프리미엄 막걸리를 생산하던 술도가들이 우리 술 청주(주세법상 약주)까지 생산하면서 약주의 스펙트럼이 상당 부분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 신사동과 명동에서 전통주 전문주점을 열고 있는 ‘백곰막걸리&양조장(이하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프리미엄 막걸리를 통해 전통주를 되살린 일부 술도가들이 우리 술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약주까지 같이 생산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일은 반가운 조짐”이라면서도 “매출 측면에선 여전히 프리미엄 막걸리에 비해 미미해서 시장이 살아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시장을 견인하기 위해선 연구개발비 등을 투입할 수 있는 전통주 지향의 기업에서 중저가대의 새로운 약주를 생산해야 하는데, 아직 이런 현상이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것을 보면 이 기업들이 프리미엄 약주 시장에 대한 전망을 그다지 밝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다만 “소규모 양조장이지만 가양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 술도가에서 다채로운 프리미엄 약주를 생산하고 있는데다, 파인 다이닝 식당에서 자신들의 음식과 페어링할 수 있는 전통주 리스트에 대한 요구가 5~6년 전부터 꾸준히 늘고 있어 향후 시장 전망은 밝다”고 덧붙였다. 와인과 사케 등 외국 주류를 음식과 페어링했던 식당들에서 전통주를 마리아주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프리미엄 약주의 시장 조성 가능성이 보인다는 이 대표의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이 가능한 것은 주류에 대한 세계 시장의 트렌드가 동조화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일고 있는 로제와인 붐이나 프리미엄 위스키에 대한 요구 또한 가처분 소득이 늘고, 소확행을 추구하는 젊은 계층의 소비성향, 그리고 미식에 대한 일반의 요구가 늘면서 함께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의 프리미엄 약주의 경우 아직 시장조성은 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요구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새로운 시장이 조성될 것을 기대해 본다. 

전통주 전문주점 중 가장 많은 술을 비치하고 손님을 맞는 곳은 백곰막걸리다. 프리미엄 약주의 경우도 80~90여 종을 비치하고 있는데, 압도적인 컬렉션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백곰이 문을 연지 3년이 넘어섰는데, 그동안 이 주점을 통해 소비된 프리미엄 약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풍정사계 춘’의 역사는 백곰막걸리의 역사와 같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란다. 백곰이 오픈한 이래 약주 부문 1위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지난달까지 포함 38개월 중 딱 두 번 ‘청진주’에게 1위를 빼앗겼단다. 한미정상회담 만찬주 등으로 익히 유명세를 타고 있는 술이자, 고가의 화이트 와인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술맛과 향이 1위의 비결인 것 같다. 

‘청진주’는 상업적으로 빚어진 술은 아닌 것 같다. 한 달에 200병 한정 생산하는 것 자체가 이미 돈을 벌 목적은 보이지 않는다. 가평에 자리한 ‘전통주연구개발원’이라는 우리술 교육기관에서 빚는다. 잘 익은 우리 술 청주의 전형이라할 수 있는 술맛을 낸다고 한다. 

‘황진이’는 2016년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선정된 바 있는 술이다. 과실주와 약주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 술은 가성비가 높아 특히 젊은 애주가들이 자주 찾는 술이라고 한다. 

‘제주명인오메기술’은 제주도 오메기(차조의 방언)로 빚은 술이다. 명인 지정을 받은 지는 오래됐지만 상업양조의 길을 나서진 않아서 아직도 생산량이 많은 술은 아니다. 전통의 제조법을 유지해 산미와 감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술이다. 

‘백련맑은술’은 충남 신평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이다. 이 술은 삼성에서 전통주 중 처음으로 만찬주로 선정된 이후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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