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완의 매미 상찬, 뜨겁게 살다 때 되어간다
철 이른 인사 기사 보며…‘때 아는 CEO 있을까’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장마비는 그대로 초록 기름인 듯하다. 연 닷새를 거푸 맞고 난 볏모는 떡잎에까지 새파란 물이 들었다.”

심훈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장마 관련 구절이다. 심훈의 눈에, 논에서 비를 맞으며 쑥쑥 커가는 벼에서 새파란 물이 보였던 것이다. 그 비가 얼마나 진하게 느껴졌으면 초록 기름으로까지 보였을까. 심훈의 이 표현 속에는 “유월 장마에 돌도 큰다”는 속담의 뜻도 담겼을 것이다. 

그런데 심훈이 2019년을 살고 있었다면 아마도 ‘초록 기름’보다는 ‘회색 기름’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자동차 바퀴에 시달려 한껏 지쳐있는 아스팔트가 가득 머금은 ‘검은 기름’이라고도 했을 듯싶다. 초록과 달리, 볼수록 삭막해지기만 하는 회색과 검은색이 우리 주변에서 더 많이 보이는 색이니 말이다.

장마는 이미 지나갔다. 그런데 몇 개의 태풍이 한반도와 그 인근으로 불어오면서 비가 잦다. 혹서기의 뜨거운 태양이 달궈놓은 한반도는 잠시잠깐 태풍이 흩뿌리고 가는 비에 눅눅해지는 여름이다. 비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심훈에게 초록 기름으로 다가왔던 장마를 윤흥길은 자신의 소설 〈장마〉에서 세밀화처럼 그려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였던 비가 지붕의 안쪽 천장을 말하는 ‘보꾹’을 뚫을 기세의 두려움으로 변하는 모습을 모두 담아낸 문장이다. 그리고 그 비는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다시 읽어봐도 이처럼 장맛비를 잘 설명하고 있는 문장이 있을까 싶다.

말복과 입추가 지났지만 장마와 태풍, 그리고 폭염으로 올해는 다채로운 여름이 그려지고 있다. 꿉꿉한가하면 아침부터 뜨겁게 달궈진 양철냄비마냥, 푹푹 익어가는 날씨가 계속된다. 그런가하면 세찬 소나기가 가는 길을 몇 번이고 붙잡기도 한다. 

결국 이런 날씨가 휴가를 부르게 되고 산과 강, 그리고 바다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의 한 대목이다. 

“장마가 개자 가평의 산들은 푸르고 비린 여름의 힘으로 눈부시다. 여름 산의 힘은 젖어 있고, 젖은 산의 빛이 천지간에 가득하다. 가까운 산이 먼 산의 앞자락을 가리고, 먼 산은 더 먼 하늘 쪽으로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달려나가 산의 출렁임은 끝이 없는데 골짜기는 들판으로 치달아 내리면서 넓어지고 골마다 물이 흘러내려 가평의 여름 산은 물소리로 흘러내린다.”

미세먼지도 없이 하늘 높이 뭉게구름이 떠있는 여름 하늘을 만끽하는 방법은 산을 찾는 것이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더위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예년에 비해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것 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소리를 들으면 여름은 가고 만다. 시인 도종환에게 매미는 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표본 같은 존재다. 

그리고 때를 가려 뜨겁게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시 〈매미〉의 첫 구절은 ‘누구에게나 자기 생의 치열한 날이 있다’이다.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치열함은 “제 몸을 던져 뜨겁게 외치던 소리/소리의 몸짓이/저를 둘러싼 세계를/서늘하게 하던 날이 있다”로 이어져 간다.

그런데 그 치열함을 표출하기 위해선 긴 침묵의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시인은 “강렬한 목소리로 살아 있기 위해/굼벵이처럼 견디며 보낸 캄캄한 세월 있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밤새도록 울던 매미는 가을을 재촉하는 귀뚜라미에게 바통을 넘기고 껍질을 벗어던진다. 이렇게 매미의 생태를 보여주며 정리되던 시는 마지막 연에서 매미에 대해 상찬한다.

“때를 잘 알고/그 때에 가장 알맞는 모습으로/뜨겁게.../뜨겁게.../살아가야 하리라”

내년 주총시즌에 맞춰 임기가 끝나는 CEO가 많다. 아직 철도 아닌데 인사 관련 기사가 나온다.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연임은 모든 수장과 임원들의 희망일 것이다. 매미처럼 때를 아는 리더는 몇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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