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식 한국신용카드학회장(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계절은 바야흐로 8월로 접어들면서 온 세상은 자연이 분출하는 에너지로 역동적인 생명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다. 에너지가 넘쳐나고 있는 주변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국내 신용카드산업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조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판매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마진구조가 급격하게 축소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가맹점 수수료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서민경제 활성화 명분으로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11차례 인하가 이뤄져 왔다. 2012년부터는 새로운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로 개편되면서 정부 주도로 영세 중소가맹점에 대해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정부는 가계부채 총량규제 차원에서 카드대출 자산 성장도 7%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그간 카드사가 카드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차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해온 레버리지 비율 완화, 부가서비스 의무 유지기간 축소, 대형가맹점 카드수수료 하한제 도입 등 굵직한 내용은 모두 제한적 허용 또는 불허됐다.

신용카드 비즈니스의 출발점은 신용판매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당장 돈이 없더라도 구매할 수 있으며 가맹점은 별도 촉진활동을 수행하지 않더라도 매출이 증가하는 혜택을 누린다. 카드사, 가맹점, 회원, 밴사, 정부 등은 느슨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내에서 상호의존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상대방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복잡한 관계를 통해 카드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카드생태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비용이 필요하다. 가맹점 수수료 갈등의 본질은 카드생태계를 가동하기 위한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소비자 시장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서비스 상품이 아니고 소비자와 가맹점을 포함한 양면시장이라는 신용카드의 특성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카드수수료 개편으로 신용카드 8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 감소 규모는 연간 8000억원 이상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35%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카드사의 손실분을 카드생태계에서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 것인지가 이슈의 핵심인 셈이다.

정부는 카드업계 스스로 고비용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도 비용과 관련되는 소비자의 혜택 감소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가서비스 의무 유지기간 단축(3년→2년)이 불발된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매출이 큰 대형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이 최소한 일반 가맹점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취지인 ‘역진성 해소’ 명분으로 카드사들은 수수료율 인상을 주장했지만 대형가맹점들은 ‘박리다매의 평범한 시장 원리’를 내세워 카드사의 손실분 보전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사실 전체 카드사용액의 66%가 대형가맹점에서 나오는 만큼 이 같은 기류는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카드사가 ‘을’일 수밖에 없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전혀 못 받는 실정이다. 영세·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에는 강제로 개입하고 대형가맹점 사태에는 ‘시장 자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정부의 이중적인 기준은 신용카드정책의 방향성 결여라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이 대목에서 조정자 내지 심판의 역할보다는 그동안 직접 시장에 개입해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해온 정부의 자가당착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신용판매 부문과 금융 서비스 부문을 포함해 신용카드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현재로서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카드산업이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경영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즉 일정 수준의 신용위험을 보유한 소비자가 신용카드 혜택을 얻고 그 대가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 상인만이 가맹점이 되는 신용카드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맹점이 필요에 의해 카드결제 플랫폼을 활용하도록 각종 과도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의무수납제 폐지를 심각하게 고려할 때다.

지난 1998년 도입된 의무수납제는 가맹점이 신용카드결제를 거부하거나 카드결제한다는 이유로 고객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정부가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맹점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지 말고 매출액 증대 및 홍보가 필요한 곳만 가입하도록 하고 불필요하면 빠지도록 선택지를 줘야 한다. 소비자를 위한 소득공제 혜택도 없앨 필요가 있다. 신용카드의 본질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카드사들 또한 현재와 같은 퍼주기식 마케팅을 지양해야 한다.

만약 정부가 그간 과도한 마케팅비용이 카드생태계에 거품을 만들어 내면서 카드사의 수익성과 건전성을 훼손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카드상품을 일반카드와 보상(Reward)카드로 구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일반카드도 소비자들에게는 편의성, 신속성, 안전성이 이미 혜택이다. 부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는 고가의 연회비를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는 보상카드로 유도하는 제도적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점차적으로 카드수수료 책정을 시장에 맡겨야 할 때다.

이제 카드사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와 협업해서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신용카드의 정책방향은 시장을 구조화하는 단계를 탈피해 신용카드생태계 내에서 자율적으로 시장을 활성화하는 단계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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