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동규 ‘즐거운 편지’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기업봐야
긴 호흡으로 숫자 너머 볼 수 있는 지구력 절실히 필요해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여성의 사회진출은 계속 늘고 있지만 여전히 유리천장과 같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남성 중심의 네트워크가 의사결정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인적 네트워크는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이에 따라 비즈니스에서의 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은행이 발 벗고 나섰다. 자상한 기업 업무협약. 풀어서 정리하면 자발적 상생 기업 업무협약을 통해 여성경제인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우리은행이 마련했다.

목적은 여성기업인의 창업지원 및 경쟁력 강화다. 협약의 내용은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중앙회에 70억원의 출연금을 우리은행이 지원하고, 기보와 신보는 이를 기반으로 여성경제인 사업 경쟁력 강화 및 창업지원 등에 1100억원 규모의 보증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은행은 여성기업 대상의 50억원의 매칭펀드를 투자하고 여성기업 전용 우대 금융상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물론 이같은 지원이 여성기업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규모도 크지 않을뿐더러 대상도 일정한 크기 이상의 기업들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경제인 전용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이번 협약은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중소벤처기업부, 한국여성경제인협회와 함께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가진 업무협약에서 “세 기관이 손을 잡고 대한민국 여성기업인과 함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매우 기쁘다”며 “147만 여성기업인들에게 차별화된 금융서비스와 양질의 기업컨설팅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협약은 은행과 정부부처, 그리고 여성기업인 모임이 함께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일회성 지원프로그램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장관이 여성 정치인 출신이라 보다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할 수는 있겠지만, 네트워크가 취약한 여성기업인들에 대한 지원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측면에선 일과성으로 끝나선 안 될 프로그램이다. 

금융은 경제의 핏줄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는 돈의 흐름에 민감하다. 흐름이 왜곡되면 바로 어디선가 병목이 발생하고, 심지어 괴사되는 영역도 생긴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적 성격의 금융지원을 흔히 우산에 비유하곤 한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에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의 첫 구절이다. 고3시절, 짝사랑했던 한 살 연상의 여대생을 그리워하며 썼던 시다. 여성기업인 지원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다가 짝사랑을 이야기하는 시로 넘어가 다소 생뚱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를 인용한 까닭은 우리은행과 중소벤처기업부가 맺은 이 협약이 성공하기 위해선 황 시인의 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배경에 지나지 않는 사소한 존재를 짝사랑으로 노래하는 시인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을 두 번째 연에서 이어간다.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랑이 그칠 것이라는 예감까지 포함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짝사랑이 이러할진대, 금융지원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은행은 숫자로 지원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겠지만 지원을 받는 기업은 숫자 너머에 있는 것을 읽어주길 바란다. 조건이 충족되면 지원하고, 모자라면 지원을 철회하는 것이 금융회사의 본질이다. 긴 호흡으로 기업의 정황과 배경까지 읽어낼 필요가 있겠지만 근시안적 사고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영화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다. 허 감독은 배우 한석규의 마지막 나레이션을 통해 황 시인의 첫사랑을 자신의 스타일로 바꿔 노래한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8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곧 하반기 결산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은행이 기업에 보일 수 있는 관심과 사랑은 여신을 비롯한 금융지원이다. 추억으로 남는 지원보단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현재의 관심이 기업들에겐 더 절실할 것이다.

우리은행의 자상한 기업협약 프로그램이 실제 기업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질 수 있도록 지구력있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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