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4 14:10 (목)
[수불시네마기행14] 향기마저 보라색인 ‘투스카니의 태양’
[수불시네마기행14] 향기마저 보라색인 ‘투스카니의 태양’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9.23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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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만드는 키안티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
투스카니와 남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 가득 담긴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에게 피렌체라는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중북부지역에 위치한 투스카니. 두오모 대성당과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다리 등 르네상스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피렌체(주도)를 끌어안고 있고, 기울어진 탑을 지닌 피사와 지역의 패권을 두고 오랜 기간 갈등했던 시에나 등 유력한 도시들이 널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역 대부분은 완만한 구릉지대이며 시선을 두는 곳마다 포도원과 올리브 나무가 우거져 있다. 그래서 지난 2003년 개봉한 다이안 레인 주연의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향기마저 보라색’이라는 대사가 등장했을 정도다. 

<투스카니의 태양>을 읽어낼 수 있는 독법은 많다. 만년 서생처럼 글에 집중하다 갑작스럽게 이혼을 감당해야 했던 한 여성의 솔로 탈출기일수도 있다.

또 아름다운 투스카니 지역의 풍광과 소렌토를 향하는 남부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로드무비처럼 고답스럽게 볼 수도 있다. 20대 청춘의 시선으로 본다면 사랑은 거침없이 질풍노도처럼 달려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람은 외부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충만해야 진정한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부부이든 홀로 된 사람이든, 파트너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스스로에게 둥지를 틀지 못하면 사랑도 부질없다는 것을 주인공 프란시스(다이안 레인 분)는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지는 투스카니 지역의 와인은 특별한 날 마시는 술이 아니라 일상처럼 다가선다. 

올리브와 래피니, 치커리 등의 쓴맛 나는 야채를 즐기는 나라답게 투스카니의 와인은 단단한 탄닌감과 산미를 자랑한다. 그래서 식사에 곁들이는 술로 이탈리아인들은 항시 와인을 마신다.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보는 이 지역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물병으로 쓰일 법한 유리병에 하우스와인이 담겨 있기도 하고 보통의 와인병에 담긴 포도주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와인의 라벨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 프란시스가 투스카니 여행에서 단체 여행객 버스에서 받아든 와인도 그랬고, 올리브 열매를 수확하고 초대받은 한 농부의 저녁 식사자리에서 마신 와인이나 구입한 집(브라마솔레)을 리모델링하며 일꾼들과 나누는 와인도 하나같이 라벨은 보이지 않는다. 없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라벨이 보이지 않도록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스스로에게 충실해야 자존할 수 있고, 집도 정성을 들여 사랑을 기울여야 정상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영화의 작법이 그대로 반영된 듯한 느낌이다.

투스카니 지역은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빚은 유명한 와인을 상당수 가지고 있는 곳이다. 수탉 모양의 로고로 유명한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의 와인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다. 그러나 영화에선 와인을 마시는 이들의 즐거운 표정이 중심이다. 와인의 라벨은 배려 받지 못한다. 마치 라벨은 허상이라고 오드리 웰스 감독이 말하는 듯싶다. 

영화를 어떻게 읽어내든 이야기는 다이안 레인의 마지막 독백과 만나게 된다. “뜻밖의 일은 항상 생긴다. 그로인해 인생이 달라진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조차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더 놀랍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소원을 ‘브라마솔레’에서 이룬다. 마지막 독백처럼 결혼과 출산, 그리고 그녀의 사랑까지 그곳에 당도한다. 기차가 들어오기 전에 철로를 놓았던 베네치아와 비엔나 철길처럼 그녀의 삶에서 ‘브라마솔레’는 연결을 위한 통로였고 도구였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연결통로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스스로에겐 얼마나 충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키안티 와인 한잔과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며 영화로나마 투스카니 지역을 바라보는 것은 또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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