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4 02:25 (목)
기업의 암묵적 부채 ‘퇴직금’…넋 놓고 있다간 신용까지 흔들
기업의 암묵적 부채 ‘퇴직금’…넋 놓고 있다간 신용까지 흔들
  • 문혜정 기자
  • 승인 2019.10.04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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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급여는 기업이 근로자의 과거 근무용역에 대한 대가로 퇴직 시 지급하기로 약속한 보수로서 이는 기업의 암묵적인 ‘부채’다.

우리나라는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을 보장하기 위해 기업에게 퇴직급여채무 대비 사외적립자산의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업이 도산할 경우 퇴직급여채무가 다른 무담보 채권보다 우선해 변제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퇴직급여 사외적립률이 낮은 기업일수록 신용등급이 낮아질 위험이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퇴직급여 적립과 운용의 주체인 기업이 퇴직급여 적립금 운용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퇴직급여 적립률 낮은 기업일수록 신용등급↓

퇴직급여는 기업이 근로자들이 과거 근무기간 동안 제공한 용역에 대한 보상으로서 퇴직 후 일시금 또는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도록 기업과 근로자 사이에 체결한 장기적인 암묵적 계약이다.

따라서 퇴직급여채무는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일종의 부채이며 기업은 이에 대한 지급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충분한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자본시장연구원에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상장기업의 재무자료를 바탕으로 ‘퇴직급여 적립률과 회사채 신용등급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퇴직급여 적립률이 낮은 기업일수록 신용등급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급여채무의 적립률 수준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기업의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는데, 일반적으로 퇴직급여 재원 마련을 위해 현금을 유출할 경우 기업의 재무적 제약이 높아져 신용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퇴법은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도를 채택한 기업에 대해 기준책임준비금 대비 사외적립자산의 최소 비율을 정해 그 이상을 적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만일 최소적립비율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이를 3년 이내에 해소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적립률이 낮은 기업일수록 최소적립비율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은 현금유출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기업의 유동성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

적립금 납부로 인한 현금유출은 기업 내부의 유동성 리스크 증가와 함께 미래 신규투자에 드는 타인자본조달비용까지 증가시킨다.

기업은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외부에서 차입하는 자금보다 조달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내부유보자금을 선호한다. 만일 적립금 납입으로 기업이 보유한 여유자금이 감소하면 기업의 외부자금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고, 이는 외부자금조달비용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신규로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퇴직급여채권이 다른 회사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선변제순위를 가짐으로써 다른 회사채 투자자들의 위험노출 정도가 증가해 기업의 신용등급이 낮아지는 경우다.

우리나라 근퇴법에서는 퇴직금 및 퇴직연금제도의 급여는 담보된 채권을 제외하고는 조세·공과금 및 다른 채권에 우선해 변제돼야 한다. 만일 퇴직급여 적립률이 낮은 기업에 투자하는 채권투자자들이 자신들이 투자한 채권이 더 높은 채무불이행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회사채 신용등급에 반영돼 해당 기업의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

◆ 실질적 부채로 인식하고 적극적 개입해야

현재 우리나라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은 퇴직연금 적립금의 낮은 운용수익률에만 집중돼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퇴직연금을 도입했던 미국과 영국 등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기업 퇴직급여의 재정상태가 신용위험, 주가변동성, 투자지출 등 기업재무 전반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에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왔다.

물론 우리나라는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기간이 짧아 아직 퇴직급여부채가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고, 해외 선진국의 전통적인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도와 달리 일시금 형태로 지급되도록 설계돼 있어 퇴직연금 재정 악화가 기업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

하지만 지난 2011년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도입에 따른 퇴직연금부채 평가방식의 변화와 저성장·저금리 추세의 지속, 인구고령화 등 퇴직연금을 둘러싼 환경 변화를 고려하면 국내 기업의 퇴직급여부채 규모와 변동성은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시장연구원 박혜진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퇴직급여 재정위험이 우리나라 기업에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퇴직연금제도 도입부터 퇴직급여 적립금 납입, 적립자산의 운용 등 전 과정의 의사결정 주체는 기업이다. 퇴직급여채무를 기업의 실질적인 부채로 인식하고 적립금 자산운용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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