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4 15:20 (목)
‘기술과 공존’ 상생은 가능한 것일까
‘기술과 공존’ 상생은 가능한 것일까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10.21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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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인 기술도 악인이 개입하면 부정적 범죄 도출
은행의 디지털DNA 이식 작업은 어떤 결과 가져올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류는 한 번도 기술의 한계를 극복해 본 적이 없다. 기술이 적용된 기계의 화려한 장점에 결함과 부족함이 가려져 있었을 뿐, 기술은 당대 과학기술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인류는 그 한계를 닦달하기보단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기술과 어울려 살려고 노력해왔다. 

물론 인류가 기술과 매번 화해하면서 어울렸던 것만은 아니다.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신석기혁명 이래 지금까지 끊이지 않았으며, 어쩌면 그 시도들에 의해 인류 문명이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에의 한계, 곧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모두 용서되고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화석연료의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핵관련 기술을 에너지 생성에 적용했던 원자력은 인류에게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 그것은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까지 건설돼 운영 중인 발전소의 원자로 및 각종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소요될 비용은 지금까지 말해온 천문학적 숫자를 몇십 배 능가할 만큼 치명적인 숫자가 될 것이다. 

인간의 불치병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동물에게 다른 동물의 세포를 이식시키면서 변형된 유전자를 만들어 내고, 심지어 존재치 않는 형태의 동물까지 만들고 있는 것이 현재의 인간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기술 개발과 연구에 대해 엄격한 도덕률을 들이댈 수는 없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기술 진보의 혜택은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앞으로 발표될 기술 중에 어떤 것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 혹은 경제적 부의 창출과 관련해서 어떻게 영향을 줄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 더욱 그렇다.

금융권은 디지털 역량 강화를 핵심 화두로 삼고 있다. 금융사 수장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디지털을 주인공으로 삼은 워딩을 내놓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금융 리더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조직에 디지털DNA를 심으려 한다. 

이와 관련, NH농협의 이대훈 행장은 은행이 스타트업 기업들과 콜라보 형식으로 진행하는 디지털 챌린지 정책을 펼치면서, 공존과 상생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지난 1기 수료식에 밝힌 바 있다. 최근 가진 2기 스타트업에 대해서도 이 행장은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으로 은행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던 기술은 전능하지 않다. 전능하지 않을뿐더러 인간의 개입은 새로운 국면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 주 보도된 3억여원을 보이스피싱으로 사기 당한 30대 교사의 사건만 보더라도 중립적인 기술의 폐해는 인간의 개입으로 완벽하게 무너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행장의 말처럼 기술은 공존과 상생의 대상이지만 그 기술의 결과에 대해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무소불위라든지 전지전능의 개념이 적용되는 순간 우리는 기술과 공존하지도 상생하지도 못하게 된다.  

유발 하라리의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마지막 구절은 그런 점에서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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