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비약하지 않으나, 인간은 스스로 비약하는 경우 많아
과욕은 불안감의 반작용일 뿐,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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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정치권은 의회 권력을 두고 한판 대결을 준비하고 있고, 금융권은 임기 만료된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자리를 두고 신구 리더십의 막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경쟁을 통해 승자를 구분해야 하는 권력 투쟁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낸다. 권력을 여럿이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패자는 때론 낭인이 되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어 대중으로부터 잊히기도 한다. 이러한 일은 기업의 리더십 경쟁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권력과 리더의 자리를 두고 벌이는 경쟁의 강도는 나날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뇌리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패배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결과는 뒤집히기도 한다. 

대개의 사람은 주어진 기회를 놓쳤을 때 상실감과 패배의식에 휩싸이게 되고, 그동안 유지해왔던 자신의 스텝과 다른 행보를 걷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소속을 잃은 낭인이거나 스스로 낙인찍은 패배자이다.

유대인 탄압이 극성에 달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하루에 건네진 깨끗한 물 한 컵을 어떤 이는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마셨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물을 나눠 반쯤은 고양이 세수라도 얼굴을 씻고 면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차이는 살고 죽음의 경계였다고 한다. 

당시의 기억을 책으로 펴낸 프리모 레비(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나 빅터 프랭클(그래도 나는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등의 책에선 열악한 상황에서도 면도를 강권하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서 자존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토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관리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강한 자존감을 보일 수 있었고 결국 살아남게 된다.

이렇게 자신을 관리해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아마도 영국의 총리를 두 차례나 역임한 윈스턴 처칠일 것이다. 최초의 총리직은 지난 1940년 5월 독일의 프랑스 침공에 따라 유럽이 화염에 휩싸였던 2차대전 기간 수행했고, 두 번째는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음에도 다시 한번 화려하게 총리로 부활했던 1951년의 일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준비된 리더십’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준비된 리더십은 무엇이었을까.

준비됐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토대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자신과 주변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글 번역본이 출판된지도 25년을 훌쩍 넘어섰지만, 여전히 읽히고 있는 토드 부크홀츠의 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한편에는 독일 철학에 심취했던 알프레드 마셜이라는 경제학자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질풍노도의 마음으로 사회를 바라보았던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선동의 불길로 이글거렸던 마르크스와 빗대 마셜은 나른한 오후의 늙은 사냥개만큼이나 느긋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셜은 알프스처럼 견고하고 한결같았다고 부연한다. 그래서 마셜의 책 <경제원론>에는 “자연은 비약하는 법이 없다”는 글이 실려있다는 것이다. 비약하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심성만이 세상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권력도 같은 이치에서 다가서야 한다. 드러내기 위해 비약하면 냉혹한 평가만이 기다릴 뿐이다. 최근 인재영입을 두고 정당들이 벌이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과 존재감이 드러나는 일과는 큰 차이가 있다. 드러낼 때는 스스로에 의해서 비약이 발생하지만, 있는 그 자체가 드러나는 경우는 비약 없이 보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받게 된다. 

기업의 리더십을 두고 벌이는 경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의 자리를 두고 벌이는 경쟁이다 보니 과욕을 부리는 일도 발생한다. 그러나 과욕의 결과는 대체로 예감할 수 있다. 그리고 과욕은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반작용일 뿐이다. 그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 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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