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솔루션 개발하다 낙동강 경치에 반해 귀농한 박성호 이사
안동 선비 김유가 쓴 ‘수운잡방’에 소개된 진맥소주 직접 내려

안동으로 귀농한 지 12년된 농부가 자신이 재배한 유기농 밀을 소주로 내렸다. 낙동강과 청량산의 경치가 어우려진 곳에서 맛보는 밀 소주의 향기가 그윽하다. 사진은 맹개술도가의 박성호 이사와 그가 내린 진맥소주
안동으로 귀농한 지 12년된 농부가 자신이 재배한 유기농 밀을 소주로 내렸다. 낙동강과 청량산의 경치가 어우려진 곳에서 맛보는 밀 소주의 향기가 그윽하다. 사진은 맹개술도가의 박성호 이사와 그가 내린 진맥소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귀농 12년 차의 농부가 양조장을 내고 술을 낸다. 그것도 농주가 아닌 소주를 내린다. 안동 시내에서 안동호를 따라 길을 나서면 소수서원을 만나게 되고, 그 길을 따라 봉화로 달리면 청량산 자락에 와닿는다.

농암종택과 함께 가을 단풍 깊어진 청량산은 울긋불긋 꽃단장이 한창이고 안동호도 덩달아 포근하게 이를 안아주며 얼굴을 붉힌다. 그곳에서 밀 소주를 취재하는 기자의 얼굴도 시음잔 한잔에 단청이 물든다.

농암종택 앞 개울을 트랙터를 타고 건너면 그곳에 밀밭과 펜션이 자리해있다. 물이 불면 조그만 보트로 이동해야 할 만큼 교통은 불편하지만, 한해에 8000명 정도가 농촌 체험과 여행을 목적으로 물길을 건넌다고 한다. 가을 단풍이 물든 풍경도 좋지만 하얗게 메밀꽃이 지천인 풍광도 사람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라고 한다.

마중 나온 ‘밀과 노닐다’의 박성호 이사. 그는 자동차 임베디드 솔루션(텔레메틱스) 사업을 하다, 안동호와 낙동강 경치에 반해 지난 2007년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귀촌 이후 밀 농사와 펜션을 운영하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주류제조 면허를 내고 안동소주를 빚고 있으니, 180도 변신에 가까운 2모작 인생을 사는 셈이다. 일의 가짓수가 많다 보니 경영 관련 일은 부인인 김선영 대표가, 농사와 양조 등은 박성호 이사가 나눠 맡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고향은 강원도 도계. 즉 고향이 아닌 타지에 정착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지 12년이 된 것이다. 정착은 물론 안착하는 데까지의 고단한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박 이사는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경험한다. 유기농 농법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품종을 찾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고구마와 고추를 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밀과 메밀 농사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현재 내리고 있는 소주를 찾는 과정도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독일에 있을 때 소믈리에 자격을 딴 데다 안동이 사과와 머루의 주산지여서 먼저 떠오른 아이템은 자연스레 와인이었다. 가톨릭상지대학에서 개설한 와인 양조과정을 다니면서 와인 양조 기술을 터득했지만, 경쟁력 있는 와인 생산은 힘들다고 생각한 그는 여러 시도 끝에 자신이 농사를 짓는 밀에 눈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밀이라는 소재가 쌀만큼 잘 발효되는 곡물이 아니어서 좋은 밀 소주를 내리기까지는 8년 가까운 시간이 들어간다. 지난해까지도 밀과 쌀을 섞어서 소주를 내렸고, 올해 들어서야 100퍼센트 밀 소주를 내릴 수 있게 됐다고 박 이사는 말한다.

이러한 박 이사의 선택에 응원군이 되어준 것은 안동소주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안동소주에 대한 설명은 안동이 몽골의 일본 침략을 위한 병참기지여서 몽골 병사들에 의해 증류 기술이 전파됐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안동의 선비 김유(1491~1555)가 집필한 ‘수운잡방’에 소주가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양주가 소개된 소주 중에는 유일하게 ‘진맥소주’ 제조법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진맥은 밀을 뜻하는 한자어. 따라서 조선 초 안동의 소주는 밀 소주였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맹개술도가는 안동소주를 내리는 8번째 술도가다. 다른 곳은 모두 쌀을 기반으로 소주를 내리지만 이 곳은 ‘수운잡방’에 기록돼 있는 밀 소주를 양조한다. 사진은 청량산에서 바라본 맹개마을의 밀밭 전경 (사진=맹개술도가)
맹개술도가는 안동소주를 내리는 8번째 술도가다. 다른 곳은 모두 쌀을 기반으로 소주를 내리지만 이 곳은 ‘수운잡방’에 기록돼 있는 밀 소주를 양조한다. 사진은 청량산에서 바라본 맹개마을의 밀밭 전경 (사진=맹개술도가)

그렇게 준비된 그의 안동소주는 맹개술도가에서 만들어진다. 언뜻 들으면 망개떡의 사투리가 아닐까 싶었는데 마을이름이란다. 그리고 술이름은 수운잡방에 적혀 있는 ‘진맥소주’. 그는 이 소주를 지난달부터 판매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는 53도와 40도, 22도 3종류다. 단연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곡물의 향기도 그윽하다.

박 이사는 밀 한 평에 소주 한 병이란다. 100kg의 밀을 발효시켜 소주를 내리면 대략 250리터 정도. 참 귀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메밀은 더 그렇다. 밀보다 더 비싸므로 자신이 농사짓지 않는 한 쉽게 소주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술도가뿐이 아니라 소목화당이라는 펜션도 들려볼 일이다. 그곳에는 연전에 인기를 끌었던 ‘미스터 션샤인’의 세트가 남아 있기도 하다. 홍파라는 여인네가 운영하던 주막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고 한겨울 얼어있는 강도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굳이 드라마 장면을 핑계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집에서 내는 소주의 향기를 맡으며 낙동강과 청량산, 그리고 밀밭 길을 걸어보는 것이 어떨까 해서 드리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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