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은행 판매 제한 고난도상품 항목에 신탁 포함
비은행 성장동력 끊겨…"예적금만 팔란 얘기?" 비판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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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은행들이 최근 발생한 파생결합펀드(DLF) 원금손실 사태에서 튄 ‘신탁 리스크’ 불똥에 난감해하고 있다. 비(非)은행 부문 성장을 위해 신탁 사업을 빠르게 확장해왔는데, 갑작스러운 신탁상품 판매제한 규제로 수익 창출 계획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 등 5개 은행의 지난 3월 말 기준 총 신탁 수탁액은 286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7년 말 기준 232조3000억원에서 15개월 만에 23.3% 급증했다.

신탁은 고객이 돈과 현물,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을 위임하면 이를 운용, 관리해 수익을 돌려주고 고객 요구에 따라 상속, 증여 같은 사후 처리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은행은 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탁 운용액의 연 0.1~1%를 수수료로 받으며 비이자 수익을 올린다.

은행들은 저금리 기조 심화로 기존 주 수익원이었던 이자 마진 축소가 불가피해지고 비은행 부문 강화가 중요 과제로 부상하자 신탁을 핵심 동력으로 여기고 관련 사업을 빠르게 키워왔다.

여기에 저금리 환경과 증시 부진에 따른 투자 대안처를 찾는 고객의 관심까지 더해져 순탄한 수익 상승 곡선을 그리던 은행 신탁은 금융당국의 규제로 때아닌 난관에 봉착한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14일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대책을 통해 최근 대규모 손실 사태를 일으킨 DLF 상품뿐만 아니라 파생결합증권신탁(DLT)과 주가연계신탁(ELT) 등 신탁 상품도 은행이 판매하지 못하게 했다.

예상보다 강도 높은 조치에 은행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DLF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 개선책 마련에는 공감하지만, 과도한 규제로 이제 막 성장하는 시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고위험상품에 있어 중요한건 고객이 상품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나 여부인데, 판매 자체를 제한하는 건 아예 영업 손발을 묶어버리는 일”이라며 “앞으로 은행은 예·적금만 팔라는 얘기로 들린다”고 말했다.

이어 “신탁은 공모 펀드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는데 이번에 고난도 사모펀드와 함께 판매 금지 대상에 포함된 것은 지나친 규제”라며 “지난 3월 신탁 영업 규제까지 완화하며 신탁 시장 활성화를 부추길 땐 언제고, 인제 와서 너무 무자비한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이 신탁을 고위험상품으로 정의하면서 신탁에 대한 고객의 인식도 부담스럽게 변했다는 점에서도 향후 사업 확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별로 관련 실무회의를 급히 열고 대응책 모색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판매 금지 상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시행령에 따른 업권 계도기간도 짧아 어떤 방향에서는 내년도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은행연합회 김태영 회장도 이번 금융위 결정에 앞장서 일침을 날렸다.

김 회장은 지난 15일 금융위가 개최한 ‘금융투자자 보호 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간담회에서 “은행의 일부 불완전판매 문제가 전체 은행권의 금융투자상품 판매 제한으로 확대된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저금리·고령화 사회에서 중요한 자산 증식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 신탁인데 오히려 규제 대상에 포함돼 유감이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연합회장이 금융당국을 향해 직접 쓴소리를 뱉은 것은 이례적이다.

은행연합회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종합대책과 관련 주요 은행의 담당 부서장들과 의견을 나누고 취합한 사항을 금융당국에 건의할 방침이다. 신탁 판매 규제해야 한다면 사모형과 공모형으로 구분하고, 사모형 판매만을 금지한 펀드와 마찬가지로 신탁 역시 사모형만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게 주 내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 판매를 제한하는 고난도금융투자상품 해당 여부는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금융사가 일차적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이 곤란한 경우에는 금융사 요청에 따라 금융위에서 별도의 판정위원회를 거쳐 결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탁상품을 두고 업계와 해석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2주간의 업계 의견수렴 기간이 종료되는 대로 고난도금융투자상품의 구체적 판단기준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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