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서양의 체스, 그리고 동양의 장기는 두 사람이 즐기는 오락이다. 그런데 이 두 놀이의 기원은 고대 인도에서 즐기던 ‘차투랑가’라는 게임이다.

기원전 1300년경에 등장했다고 하니 대략 4300년은 훌쩍 넘었다. 그런데 차투랑가라는 게임은 네 명이 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차투랑가는 네 구성원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기원이 되는 게임은 네 사람이 했는데 어쩌다 현존하는 장기와 체스는 두 사람이 즐기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경기의 운영이 복잡해지면서 관리가 힘들어져 그리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장기와 체스는 여전히 중요한 오락 중 하나이다. 물론 요즘의 젊은이들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더 즐기지만 말이다. 이유는 현란한 그래픽이 이미지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에게 더 소구력을 발휘한 탓도 있겠고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어 더 다층적인 전략과 실행이 필요한 탓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즐기는 체스나 장기는 전략 게임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다. 특히 동양에선 바둑을 최고의 경지에서 바라봤다.

그러나 의사결정과 관련해 주요한 20세기의 이론인 ‘게임이론’에선 체스나 장기 등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지 않았다.

1944년 폰 노이만과 오스카 모르겐슈테른 두 사람의 연구 결과인 <게임이론과 경제적 행동>은 이후 경영전략 및 국제관계학에 많은 영향을 줬다. 그런데 노이만이 게임이론에 주목하면서 접근한 게임은 체스나 장기가 아니라 포커 게임이었다.

이유는 체스는 잘 정의된 계산의 한 형식이었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가 매번 최상의 수를 생각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으로 모든 수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를 가지고 있어서다. 다만 상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를 뿐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게임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노이만은 포커 게임을 중심에 두고 연구했다.

그런 점에서 포커 경기는 우연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게임이다. 물론 다른 경기자의 다음 플레이를 확률적으로 계산해서 예측할 수 있긴 하지만 바둑이나 체스, 장기만큼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특히 같은 패를 들고 있어도 패를 든 사람이 허세에 찬 행위에 따라 상대들은 각각 다른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 포커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경쟁에선 우연성(운)이 더 많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승자독식사회>라는 책을 쓴 로버트 프랭크는 경쟁자가 많을수록 실력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물론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운에 의해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갖췄더라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의 기회를 잡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NH농협은행의 이대훈 행장은 3연임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고, IBK기업은행은 ‘낙하산’ 가능성이 자주 언급되면서 노조의 집단행동에 대한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차기 신한금융그룹의 수장을 두고 펼쳐지는 별들의 전쟁은 현재의 조용병 회장을 포함한 다섯 사람의 숏리스트(압축후보군)가 발표되면서 한껏 뜨거워졌고, 대구은행장 인선을 위한 숏리스트 선정도 임박했다.

금융권은 현재 최고 리더의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 중이다. 후보군에 진입한 사람들은 각자의 달란트를 회장 및 행장 선임을 위해 구성한 위원회(회추위 및 행추위) 위원들에게 어필하며, 남은 한두 달 애를 태우며 기다릴 것이다.

한 사람만이 리더가 되고 나머지 사람은 탈락해야 하는 승자독식의 게임. 그래서 금융권의 인사는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또 그만큼 뒷말도 많은 것이 오랜 전통처럼 남아 있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권의 외압이 확연하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감독기관을 통한 전언이나 경고 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과거처럼 직접 행장 및 임원 선임에 힘을 발휘하지는 않으니 그래도 많이 좋아진 셈이다.

이처럼 정치적 외압이 사라진 공간은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른 힘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 힘은 대체로 내부에 형성돼 있는 ‘보이지 않는 손’ 같은 숨은 조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조직의 힘이 작용한다고 해도 객관적 지표를 무시한 회장 및 은행장 선임은 불가능하다. 결국 실적과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만이 승자독식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명이 경쟁하는 게임에선 능력만큼 운도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운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정량화할 수도 없다. 미리 대비할수도 없는 요소에 게임의 운명이 내맡겨진다는 것이 비극적이지만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몇 사람들만의 경쟁인 만큼, 객관적 지표에서의 우열을 가리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운이라는 요소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듯 싶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