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31 00:10 (일)
감독기관의 전략적 유연성을 주문한다
감독기관의 전략적 유연성을 주문한다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9.12.16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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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위원장, 첫 은행장 간담회에서 생산적 경쟁 주문
제도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도 인정해줄 필요 있어
12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시중·지방은행장 간담회서 발언하는 은성수 금융위원장
12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시중·지방은행장 간담회서 발언하는 은성수 금융위원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생산적 경쟁과 소모적 경쟁,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주 가진 은행장들과의 첫 간담회 자리에서 내놓은 화두다.

우리 은행들이 생산적인 경쟁보다는 소모적 경쟁에 더 치중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은행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생산적인 금융과 성장동력 발굴에 적극 나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은행이 이자 중심의 전통적인 영업을 고수하고 있으며, 담보 중심의 여신평가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영업을 펼치고 있다는 은 위원장의 지적은 옳다.

또한, 은행들이 신시장 개척을 위한 노력과 소비자보호경쟁, 신상품 개발 경쟁 등 생산적 경쟁을 위해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옳은 주문이다. 감독기관의 입장에서 충분히 주문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최근 물의를 빚은 일부 은행들의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한 비판도 적절하다.

아마도 첫 간담회였던 만큼 준비된, 그러면서도 정제된 단어와 지적을 내놓은 것 아닌가 싶다. 생산적 경쟁과 소모적 경쟁을 대비시키면서 좀 더 적극적인 은행의 역할을 끌어내려는 주문의 내용만 보더라도 간담회의 성격이 읽혀진다.

그런데 은 위원장의 생산적 경쟁 주문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쉽지 않다. 이유는 현재의 시각에서 필요하다고 느낀 각종 규제에 둘러싸여 있는 은행들이 규제의 틀 안에서 빈틈을 찾아 생산적 경쟁 영역의 수익처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들어 내더라고 제도와 현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제도는 곧바로 현실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제도의 틀을 벗어나는 순간, 바로 위법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DLF 사태를 이런 경우라고 단정적으로 대입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편법이나 위법한 행위를 벌인 은행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규제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의 고충도 금융위와 금감원이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는 병목을 줄이는 방향으로 숙고돼야 한다. 병목을 풀지 않고 원활한 소통 및 유통은 기대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제도는 현실의 트렌드를 빠르게 수용하지 못하는 태생적(시간적)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위원장의 주문이 현실에서 이뤄지기 위해선 은행과 금융회사들이 좀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즉 현재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로선 자본과 영업, 상품 계획과 관련, 다양한 규제 속에서 빈틈을 찾아내려 할 것이다.

그런데 규제의 틀이 네거티브인 경우는 좀 더 자유롭게 발상을 전환할 수 있지만 포지티브인 경우는 곳곳이 지뢰밭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감독기관의 유연성이 절실할 때다.

전략은 힘의 원천이다. 감독기관의 전략은 금융회사들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게다.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판을 깔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판을 바꿔가면서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금융의 기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융회사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당연히 시장에서의 지배력, 즉 매출 증대에 전략적 포인트가 집중될 것이다. 따라서 감독기관과 은행의 견해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일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법률적 테두리에서 판가름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 제도가 현실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할 때는 그 테두리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물론 은 위원장도 금융위와 감독원에게 같은 주문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략이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선 내외부에 전략의 힘이 미쳐야 한다.

내부에선 전략적 동선에 은 위원장의 핵심가치가 실려야 할 것이고, 외부는 위원장의 워딩을 통해 가이드를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워딩은 공허해진다.

다음은 정치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권력에 대한 발언이다. “권력은 오로지 말과 행동이 함께할 경우에만, 다시 말해서 말이 공허하지 않고 행동이 야만적이지 않을 때, 말이 의도를 숨기는 쪽으로 사용되지 않고 행동이 관계를 강화하며 현실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는 쪽으로 사용되지 관계를 파괴하는 쪽으로 사용되지 않을 때 실현된다.”

권력의 관계를 정확하게 읽어낸 말이다. 내년 초에는 은 위원장의 검증을 위한 행동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들은 그 행동에 대비해 생산적 경쟁을 위한 효과적인 실천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공간에서 필요한 것은 감독기관의 전략적 유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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