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하영인 기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가진 게 있어야 이웃을 돕는다는 뜻이다. 한때 카드사와 밴(VAN, 부가가치통신망사업자)사는 함께 호황기를 누렸으나 과거의 영광은 빛바랜 지 오래다.

일반적으로 카드결제는 ‘카드사-밴사-가맹점’ 구조로 이뤄지고 있으나 밴사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는 추세다. 밴사와 계약해 가맹점들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5000여개 대리점은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여기에는 소상공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최근 수년에 걸쳐 십여차례 이뤄진 금융당국의 무리한 카드수수료 인하가 영세한 밴 대리점의 종사자 약 3만명의 생계를 위태롭게 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맹점이 부담하고 있는 카드수수료 원가에는 마케팅비, 자금조달비, 승인·매입비, 일반관리비, 조정비용, 위험관리비, 밴 수수료 등이 포함된다. 금융당국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위해 고비용 결제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카드사로 하여금 밴 업무를 축소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일례로 카드사들이 밴사의 전산망을 통하지 않고 가맹점과 직승인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카드사와 수수료율 계약이 정액제가 아닌 정률제로, 매출전표 직매입 확산 등 밴사들의 역할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내년 2월이면 종이영수증에 대한 소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에 먹구름까지 드리운 모습이다.

사실 변화무쌍한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는 건 퍽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아직은 ‘공생’과 ‘상생’을 외치는 목소리가 크다. 밴사들은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인 금융당국이 나서서 조율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은 ‘카드수수료 개편 후속조치 과정에서 밴 수수료의 과도한 인하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추진하겠다’라는 다소 추상적인 답변만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수수료 인하’라는 폭탄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상공인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카드사가 떠안았던 손실 부담은 밴사로, 밴사 대리점으로, 끝내 영세가맹점주에게 비용이 전가됐다.

밴 대리점들은 그간 무상으로 제공하던 20만원 상당의 카드단말기, 80만원가량 판매정보관리시스템(POS) 기기 등을 영세가맹점을 시작으로 유상 판매하기로 했다. 전표 공급, 단말기 A/S 등 관리 업무 역시 더 이상 무료로 누릴 수 없게 됐다.

당국이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꺼내든 당근책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월 카드수수료가 몇만원씩 절감된 효과는 다른 비용이 발생하면서 상쇄됐다. 오히려 더 출혈이 커진 소상공인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금융당국의 ‘관치금융’으로 인해 시장원리가 훼손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카드수수료를 낮춤으로써 얻은 소상공인의 비용 절감 효과가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현재 카드사들은 수수료 수익성 악화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소비자들의 카드 혜택도 줄였다. 밴업계도 이와 비슷한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카드사에 대해서만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도 당위성을 떨어뜨린다. 동일한 사업을 영위하는 간편결제사업자들은 수수료 규제가 따로 없어 카드사보다 높은 수수료율을 책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실패한 정책’이란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는 카드수수료 인하를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이해관계자들 입장을 다시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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