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예술 개화기 ‘로셀의 비너스’ 부조물에 담긴 것은 무엇
뿔잔에 채워진 의미처럼 2019년 송년 술잔에 뜻 담겨 있어

▲ 2만5000년 전 남 프랑스의 도르도뉴 지역에서 발견된 2만5000년 전의 비너스 부조상. 한 손에는 들소의 뿔잔이 들여 있고, 다른 한손은 배에 대고 있는 비대칭 구조의 조각이다.(사진 : 보르도 아키텐 박물관)
▲ 2만5000년 전 남 프랑스의 도르도뉴 지역에서 발견된 2만5000년 전의 비너스 부조상. 한 손에는 들소의 뿔잔이 들여 있고, 다른 한손은 배에 대고 있는 비대칭 구조의 조각이다.(사진 : 보르도 아키텐 박물관)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사물은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은 자신이 생각하는 당위를 뒷받침해주는 쪽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2만 년 전의 부조가 하나 있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가 풍부하게 발견된 프랑스 남부 라스코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르도뉴의 로셀 절벽에서 발견된 비너스다. 원시예술의 절정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발견된 비너스를 두고 학자들 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미술사학자들은 2만5000년 전 석회암 동굴벽에 새겨진 이 부조를, 좌우대칭을 깨면서 새로운 미의 세계를 연 작품이라고 말한다. 오른손은 들소의 뿔잔을 들고 있고 왼손은 자신의 볼록한 배에 대고 있는 여성의 모습. 그리고 얼굴은 윤곽선만 있고 구체적 형태는 조각하지 않았지만, 방향은 뿔잔을 향하고 있다.

주먹도끼마저도 완벽한 대칭 구조로 만들려 했던 초기 인류. 이유는 좌우가 대칭되도록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힘든 작업이었고, 그래서 당시의 시각에선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크기의 도끼도, 자신들의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제작했던 그들이 대칭을 버리고 비대칭의 부조를 쪼았다는 것은 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미학자들의 시각에선 아름다움이 우선시된다.

술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은 미술학자와 달리 들소의 뿔잔에 집중한다. 물론 볼록한 배를 임신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이 잔을 물 마시는 용도로 보려 한다. 그런데 42㎝의 부조상(보통은 10㎝)을 만들면서 물 마시는 모습을 상징화한다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 물잔을 통해 동시대 사람들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소는 사냥과 관련한 의례가 진행되었던 곳. 따라서 다산의 비너스로서,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샤먼으로 보려는 시각이 많다. 다분히 신화학자들의 시각이지만 말이다.

신화학자들은 이 뿔잔에 세로로 새겨진 13개의 줄에 관심이 가 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것을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의 밤의 수효라고 말한다. 즉 뿔잔은 천상의 생명주기를, 그리고 임신한 배에 대고 있는 왼손은 지상에서의 생명주기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2만5000년 전의 초기 인류에겐 잉태와 출산은 그 자체가 신비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른 동물들의 회임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중에서야 그 비밀을 알게 됐으니, 초기 인류의 모계사회는 그 신비로운 현상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신화학자들은 사냥 의례를 준비하는 상징적 샤먼으로서 더 많은 들소 사냥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부조라고 설명한다.

물론 이 뿔잔을 악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을 대야 하는 마우스피스가 반대편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악기라면 굳이 반대로 그려야 했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신화학자들의 설명이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냥 제의를 떠올린다면, 그 뿔잔엔 술이나 향정신성 음료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다산의 상징인 비너스이자, 샤먼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면 그 잔에는 포도주나 맥주, 혹은 벌꿀술, 그것도 아니면 고대 인류들이 환각제로 자주 사용했던 광대버섯을 우린 물이 들어있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냥제의는 초기인류에게 가장 간절한 기원을 담은 행사였다. 그래서 사냥터에서 필요한 용맹과 용기, 그리고 협력을 사냥행위에서 제고시킬 그 무엇인가(술 또는 환각물질)는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로셀의 비너스의 손에 술이 들어있는 술잔이 들려 있다 해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2월도 막바지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한해를 기원하는 송년회가 그치지 않는 계절이다. 2만5000년 전의 비너스가 들고 있는 뿔잔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잔에도 물 또는 술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은행장 및 금융회사 CEO에 대한 각종 하마평이 난무하고, 주총 시즌이 끝나면 바로 다가올 인사철.

그런 탓에 금융권의 송년 자리는 술자리가 많다. 비너스의 술잔에 의미를 담았듯 우리들의 술잔에도 2019년과 2020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상아에 비너스를 조각하거나 새겼던 그들처럼 우리도 그 의미대로 오늘을 살고자 노력한다. 각자도생하며 열심히 살아낸 2019년을 이렇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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