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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우리술 140] 100년전 서울술 ‘향온주’와 ‘홍소주’를 그리며
[응답하라, 우리술 140] 100년전 서울술 ‘향온주’와 ‘홍소주’를 그리며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1.06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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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제주는 물론 공신 하사품 및 북경 사신단 진헌품
‘우리술품평회’ 대상 받은 ‘풍정사계’에서 DNA 이어가
농림부 주최의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는 한편 청와대의 만찬주 등으로 선정하면서 주질을 인정받고 있는 화양의 ‘풍정사계’ 제품들
농림부 주최의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는 한편 청와대의 만찬주 등으로 선정하면서 주질을 인정받고 있는 화양의 ‘풍정사계’ 제품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에겐 국어 교과서를 통해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윤선도는 조선 17대 임금 효종에겐 글을 깨우쳐준 스승이면서 항상 마음으로 잊지 못하는 인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해남 윤씨의 종택인 녹우당에 전해오는, 왕실에서 특별히 물품을 내리면서 발급하는 문서인 은사장에는 인조와 효종의 윤선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선물 목록이 가득 적혀있다. 각종 세시와 행사에 맞춰 보낸 임금의 하사품은 제철 식재료와 향신료 및 각종 생활용품 등인데 매번 빠지지 않고 보낸 물건 중 하나가 술이다.

녹우당 기록에 따르면 윤선도가 받은 술은 소주와 향온주, 그리고 홍소주 등이다. 소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증류식 소주를 말하며, 향온주는 녹두를 넣어 빚은 누룩(향온곡)으로 담근 술을 의미한다. 맑은 술이나 증류한 술 모두 향온주라 칭하므로, 윤선도가 받은 술은 전달과정에서 상하지 않았을 향온소주였을 것이다.

이 술은 조선시대의 고조리서인 <고사촬요>와 <규곤시의방> 등에 제조법이 기록돼 있으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박현숙 명인)로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이와 함께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홍소주는 향온주나 소주를 내리면서 뿌리가 붉은 약재인 지초를 통과시켜 술의 빛깔을 붉게 만든 술이다. 평양의 감홍로도 같은 계열의 술이며, 현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의 민속주인 ‘홍주’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술이다.

임금이 술을 하사할 때 5병을 보내는 것이 당시의 예법이니 궁궐에서 술을 담당하는 양온서는 사철 쉬지 않고 술을 빚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각종 제사는 물론 왕실과 공신 등에게 하사품으로, 그리고 북경으로 가는 사신단에 진헌품으로 보내는 수요가 끊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관점을 달리해서 윤선도가 받은 술의 목록을 살펴보자. 소주와 향온주와 홍소주. 이 술들은 100년 전 이 땅에서 빚어지던 술들이다. 특히 한양 도성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던 술인 것이다. 그런데 이 술의 흔적은 사라져 버렸다.

음식문화로서 술을 바라보지 않고, 마시면 취하는 알코올 음료로 술을 바라보던 시절, 쌀은 오랜 기간 금기의 대상이었다. 금기는 이 술들을 기억에서 지웠고, 결국은 문화까지 소멸시켰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향온주와 진도에서 생산되는 홍주 등으로 100년 전 우리 문화로 자리했던 기억을 대체할 수는 없다. 문화는 소비되면서 확장되고 새로운 세대와 만나 변화하면서 원형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소비 없는 기억은 불가능하다. 맛이 추억에 기반하듯이 술도 기억되기 위해선 소비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향온주는 상업양조를 하지 않은 박제화된 술이며, 진도홍주는 지역의 특산품으로 지역의 경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서울 중심으로 소비되던 홍소주는 진도홍주(보리누룩)와 달리 향온곡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원형에 가까운 술은 현재 생산되지 않고 있다.

우리 술맛의 뿌리는 누룩이다. 밀과 보리, 누룩 중에 무엇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술맛은 다채롭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그중 으뜸으로 향온곡을 치켜세웠고, 이 누룩으로 빚은 술을 왕실에서 소비했다.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가양주들이 문헌 등을 토대로 복원돼 상업양조에 나서고 있다. 그런 점에서 원형을 되살린 우리 술의 지평이 늘고는 있지만, 더 많은 술이 있었을 서울 지역의 술은 더디기만 하다. 그나마 삼해소주 정도가 주류제조 면허를 취득하고 소주를 생산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향온주와 홍로주 그리고 송절주 등의 술들도 문화재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또한 최근 ‘우리술품평회’에서 여러 번 상을 받은 ‘풍정사계’를 생산하는 화양에서 100년 전 우리 술의 DNA를 유지하듯 향온곡을 사용하고 있어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이런 분위기가 더욱 확장돼 향온곡으로 빚은 홍소주가 출시돼,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후렴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를 안주 삼아 술잔에 담긴 주향을 즐기는 날을 고대해본다.

풍정사계를 생산하고 있는 화양양조장은 모든 술을 녹두를 넣어 만드는 향온곡을 사용한다. 사진은 빚은 향온곡을 법제하는 모습 (사진=화양양조장)
풍정사계를 생산하고 있는 화양양조장은 모든 술을 녹두를 넣어 만드는 향온곡을 사용한다. 사진은 빚은 향온곡을 법제하는 모습 (사진=화양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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